출판사 제공
환경 저널리스트 남종영의 신간 『닭뼈와 플라스틱』은 인류세(Anthropocene)를 탐사하는 책이다. 먼 훗날 오늘의 지층을 파헤친다면 가장 강력한 흔적은 대량소비된 닭의 뼈와 썩지 않는 플라스틱일 것이다. 저자는 이를 ‘범람과 은폐의 시대’의 상징으로 읽는다. 인간이 남긴 흔적은 넘쳐나지만, 그 생산과 폐기의 과정은 감춰져 있다는 것이다.
책은 인류세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에서 출발한다. 산업혁명, 1950년대의 ‘거대한 가속’, 17세기 플랜테이션, 심지어 신석기 농업혁명까지 다양한 시점이 제시된다. 중요한 것은 어느 시점이 정답인가가 아니라, 시작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책임의 주체와 역사적 맥락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과오를 ‘인류세’라는 말에 넣어 떠내려 보내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은 인류세가 단순한 지질학적 개념을 넘어 정치적 효과를 지닌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저자는 인류세적 사건의 현장을 직접 탐사한다. 포항 지열발전소가 촉발한 지진, 인간이 높여 놓은 이산화탄소 농도로 닫혀버린 빙기의 문, 핵실험 방사성 낙진이 새겨진 외딴섬의 나이테, 평택 쓰레기 매립지에서 끄집어낸 플라스틱, 그리고 3,500년 전 닭 가축화의 흔적까지. 한때 하찮은 쓰레기와 평범한 가축이 이제 지구의 시간을 기록하는 표지로 남았다. “닭의 혁명은 닭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177쪽)라는 구절은 인간의 개입이 생명 자체를 어떻게 변형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책은 2024년 인류세 공인안 부결 사건도 비중 있게 다룬다. 불과 70여 년의 흔적을 새로운 지질시대로 선언하는 데 대한 층서학적 저항과, 인간이 지구 시스템을 질적으로 바꾸었다는 새로운 현실이 충돌한 것이다. 저자는 이를 “지질학이 그려 온 고요한 추상화와 새로운 패러다임의 충돌”로 읽는다.
후반부는 ‘행성적 관점’을 제시한다. 우주선 지구호, 가이아 이론, 행성적 경계, 도넛 경제학을 통해 지구를 유한한 시스템으로 다시 바라본다. 질문은 이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행성의 한계를 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함께 번영할 것인가”로 옮겨간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인류’라는 말 속에 뭉뚱그려진 책임을 다시 묻는다. 누가 더 많이 파괴했고, 누가 먼저 피해를 감당하는지, 그리고 비인간 존재에게도 정치적 목소리를 부여할 수 있는지.
『닭뼈와 플라스틱』은 기후변화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복합적 위기를 직시하게 한다. 닭뼈와 플라스틱이라는 사소한 흔적에서 출발해, 인간과 지구의 얽힘을 탐사하며 인류세라는 벼랑 끝 영토를 드러내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