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은 단순히 물가가 오르는 현상일까. 아니면 부의 흐름을 바꾸고 자산의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거대한 경제적 사건일까. 신환종의 신간 『인플레이션은 누구를 부자로 만드는가』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물가 전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이 어디로 이동하는가를 읽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한국투자증권 고문이자 국내 대표 거시경제 전문가로 꼽히는 신환종은 이번 책에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70여 년의 인플레이션 역사를 추적하며,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부를 재편해 왔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2026년부터 2030년까지를 새로운 '복합 인플레이션 시대'로 규정하며 앞으로의 투자 환경을 전망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은 인플레이션이 매번 다른 원인으로 발생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언제나 새로운 부자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 시기에는 금과 원자재가, 1980년대에는 채권과 주식이, 2000년대에는 현금과 채권이, 그리고 2020년대에는 빅테크 기업들이 새로운 부의 중심이 되었다. 변화의 흐름을 먼저 이해한 투자자들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자산 가치 하락을 감내해야 했다.
이 책은 물가 상승의 원인을 단순한 통화량 증가로 설명하지 않는다. 저자는 현대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화폐 공급, 노동시장, 공급망 충격, 기업 이윤 확대, 탈세계화, 에너지 가격 상승, 친환경 전환, 기대 심리 등 아홉 가지 요인으로 구분해 설명한다. 특히 인플레이션은 경제와 산업, 정책, 국제정치가 복합적으로 맞물린 구조적 현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신환종이 가장 주목하는 변화는 AI 혁명이다. 그는 인공지능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동시에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반도체 인프라 구축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요구한다고 분석한다. 이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전력과 금속, 자원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물가 상승 압력도 함께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중 패권 경쟁과 공급망 재편도 중요한 변수로 등장한다. 과거 세계화 시대에는 저렴한 생산비를 통해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국가 안보와 경제 안보가 강조되면서 생산기지 이전과 자원 확보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탈세계화가 구조적인 인플레이션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한다.
또 다른 변화는 디지털 금융과 디지털 자산이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와 스테이블코인, 실물자산 토큰화 기술이 자본 이동의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 진단한다. 과거에는 기관투자자 중심이던 원자재 시장에 전 세계 개인 자금이 실시간으로 유입될 수 있게 되면서 시장 변동성과 새로운 투자 기회가 동시에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책의 절반 이상은 역사 분석에 할애된다. 미국의 1960년대 대인플레이션과 1970년대 오일쇼크, 1980년대 볼커의 긴축정책, 1990년대 골디락스 경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 인플레이션까지 시대별 경제 흐름을 통화·채권·주식 시장의 움직임과 함께 정리한다.
미국뿐 아니라 일본, 독일, 영국, 중국, 소련, 동유럽,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다양한 국가의 사례도 분석한다. 이를 통해 인플레이션이 정치와 사회, 투자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하며 역사 속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낸다.
특히 한국 투자자들에게는 더욱 의미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저자는 한국 경제가 에너지와 식량 수입 의존도가 높고, 가계 자산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에 집중되어 있어 글로벌 인플레이션 충격에 더욱 민감하다고 설명한다. 같은 국제 경제 변화라도 한국에서는 더 큰 변동성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무엇이 승자가 될까. 저자는 하나의 자산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보다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응 가능한 포트폴리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AI 성장 자산, 인컴 자산, 실물자산과 대체투자 등으로 구성된 균형 잡힌 자산 배분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미래를 정확하게 맞히는 것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김동환 삼프로TV 대표는 추천사에서 이 책을 "숫자를 맞히기보다 맥락을 이해하게 하는 책"이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인플레이션은 누구를 부자로 만드는가』는 단기적인 투자 종목 추천서가 아니다. 경제사와 금융시장, 지정학과 기술 혁신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부의 이동을 읽도록 돕는다.
『인플레이션은 누구를 부자로 만드는가』는 단순한 경제 전망서나 투자 안내서를 넘어선다. 인플레이션을 하나의 가격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부의 질서를 만드는 역사적 사건으로 바라보며, 독자들에게 앞으로의 5년을 준비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한다.
물가 상승이 두려운가를 묻는 대신, 앞으로의 인플레이션이 누구에게 기회가 될 것인가를 질문하는 책.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에 경제와 투자, 미래를 함께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 유용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