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어떤 뿌리를 가진 인물이었을까. 도선국사는 왜 유독 왕건의 가문에 주목했을까. 그리고 전라남도 화순 운주사지에 전해지는 "와불이 일어나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설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최홍의 신간 『도선과 왕건, 그리고 장보고』는 이러한 역사적 의문에서 출발해 고려 왕실과 도선국사, 해상왕 장보고를 하나의 서사로 연결하는 독창적인 역사 탐사서다.
이 책은 정설을 정리하는 일반 역사서와는 성격이 다르다. 기록의 빈틈에 주목하고, 설화와 비문, 유적과 문양, 지역 전승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며 새로운 역사적 가설을 제시하는 탐구 보고서에 가깝다. 저자는 기존 역사학계의 통설에 질문을 던지며 고려 건국 과정에 감춰진 또 다른 이야기를 추적한다.
탐사의 출발점은 고려 왕실의 세계(世系)다. 왕건의 선조들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만, 일부 내용은 설화적 요소가 강하고 계보 자체를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다. 저자는 이러한 불분명함 속에서 오히려 중요한 역사적 단서가 숨어 있다고 본다. 고려 왕실의 선조를 둘러싼 여러 전승과 비판 기록들을 검토하며 왕건 가문의 진실에 접근하려 한다.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인물은 통일신라 말기의 고승 도선국사다. 풍수지리 사상으로 널리 알려진 도선은 왕건의 아버지 왕륭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고 전해진다. 저자는 도선국사 비문에 남아 있는 기록들을 분석하며, 도선이 단순히 풍수 이론을 전한 승려가 아니라 고려 건국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예견하고 준비했던 인물로 해석한다.
책의 핵심은 화순 운주사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운주사에는 수많은 석불과 석탑, 와불(누워 있는 불상), 칠성석 등 독특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그동안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어 왔지만 명확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저자는 운주사지가 단순한 불교 유적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인물을 기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염원하는 상징 공간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운주사지 곳곳에 나타나는 문양과 상징물, 그리고 관련 설화들을 분석한 저자는 이 유적이 장보고와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암시하는 와불 설화와 칠성 이미지, 석탑 구조 등을 장보고의 꿈과 이상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것으로 해석한다.
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저자는 장보고와 왕건 가문 사이에 혈연적 또는 정신적 계승 관계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장보고가 이루지 못한 이상과 정치적 꿈을 도선국사가 이어받아 왕건을 통해 실현하려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려 건국은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라 장보고의 유산이 새로운 형태로 부활한 사건일 수 있다는 대담한 가설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흑산도와 완도에 남아 있는 장보고 관련 전승과 유적도 함께 추적한다. 칠성동굴, 탑영감 설화, 장좌리의 무덤 전승 등 지역 곳곳에 남아 있는 흔적을 운주사지의 상징 체계와 비교하며 연결고리를 찾는다.
물론 저자 역시 자신의 주장이 정설이 아니며 확정된 역사적 사실도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 이 책은 역사학 논문이 아니라 탐사서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사료의 공백을 설화와 문화유산 해석을 통해 보완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따라서 독자들은 책이 제시하는 가설을 하나의 흥미로운 역사적 상상력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저자 최홍은 전북대학교 법학과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을 졸업한 뒤 공직생활을 거쳤으며, 『천년의 비밀 운주사』, 『마이산 석탑군의 비밀』, 『우리 문화재 진실 찾기』 등 문화유산과 역사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저술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이번 신작 역시 기존 연구의 연장선에서 운주사지와 고려 건국사의 숨겨진 연결고리를 탐색하고 있다.
『도선과 왕건, 그리고 장보고』는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나열하는 책이 아니다. 고려 왕실의 계보, 도선국사의 비문, 운주사지의 수수께끼, 장보고의 흔적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으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왕건은 정말 장보고의 후손이었을까. 도선국사가 꿈꾸었던 새로운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운주사지의 와불은 과연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그 질문들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하며, 역사 기록의 빈틈 속에서 잊혀진 가능성을 찾아 떠나는 흥미로운 탐사의 길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