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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소년은 왜 돌에 나라를 새겼는가, 『돌에 새긴 나라』(홍종의, 봄날의곰)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친 주재년 열사의 실화를 어린이의 눈높이로 되살린 역사 동화

장세환2026년 8월 4일 오전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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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애 새긴 나라.jpg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열다섯 살 소년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돌에 새긴 나라』는 일제강점기 말기 전라남도 여수 돌산읍에서 실제로 일어난 주재년 열사의 항일 투쟁을 바탕으로 한 역사 동화다. 총칼도 조직도 없었던 한 소년이 돌담 바위에 독립의 염원을 새기고 끝내 목숨까지 바친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어떤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1943년은 우리말과 이름마저 빼앗긴 시대였다.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했고, 학교에서는 일본어 사용을 강제했다. 전쟁 물자를 마련하기 위해 쇠붙이와 목화솜까지 수탈해 가던 암울한 시기였다. 그런 시대에 여수의 한 시골 마을에 살던 열다섯 살 소년 주재년은 부러진 호밋자루 끝에 달린 쇠꼬챙이로 목화밭 돌담 바위에 글자를 새기기 시작한다.

그가 새긴 문장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었다. "조선과 일본은 다른 나라다", "일본은 반드시 망한다", "조선 만세", "조선에 해방이 온다"라는 의미가 담긴 스무 글자였다. 일본 제국주의의 한복판에서 독립에 대한 신념을 돌에 새긴 것이다. 총보다 강했던 것은 나라를 잃지 않겠다는 한 소년의 의지였다.

홍종의 작가는 이 역사적 사건을 열두 살 소녀 미자의 시선으로 재구성했다. 미자는 일본식 이름 '오카무라 미코'를 받고 일본인이 된 듯한 자부심마저 느끼는 평범한 아이였다. 하지만 재년이의 행동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을 지켜보면서 서서히 현실을 깨닫게 된다. 왜 우리말을 지켜야 하는지, 왜 나라를 잃은 슬픔이 중요한지, 그리고 왜 누군가는 목숨까지 걸고 저항했는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의 힘은 거대한 역사보다 한 사람의 변화를 보여주는 데 있다. 독자들은 미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식민지 교육에 길들여진 어린아이가 어떻게 역사의 진실을 깨닫는지를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된다. 독립운동을 거창한 영웅담이 아니라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는 삶의 문제로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주재년 열사는 돌담에 새긴 글씨가 발각되면서 일본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된다. 일제는 마을을 불태우겠다고 협박하며 범인을 찾았고, 결국 주재년은 모든 책임을 홀로 짊어진다. 그는 혹독한 고문을 견디면서도 끝까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석방된 뒤에도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받다가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잊혀졌다는 사실이다. 주재년 열사의 투쟁은 수십 년 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었고, 2006년 판결문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돌에 새긴 나라』는 잊힐 뻔했던 어린 독립운동가의 삶을 새로운 세대에게 전하는 역할을 한다.

홍종의 작가는 방정환문학상과 윤석중문학상을 수상한 아동문학가답게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역사를 풀어낸다. 여기에 장선환 화백의 판화풍 그림은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분위기와 목화밭 돌담에 새겨진 결연한 의지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어린 독자들의 몰입을 돕는다.

『돌에 새긴 나라』는 단순한 역사 학습 동화가 아니다. 자유와 평화, 우리말과 이름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이야기다. 광복 80여 년이 지난 오늘, 열다섯 살 소년이 돌에 새긴 스무 글자는 여전히 독자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내가 죽은 뒤에 반드시 좋은 세상이 온다"는 주재년 열사의 믿음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가능하게 한 희생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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