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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알면서도 반복하는가, 『왜 우리는 멈추지 못할까』(주세진, 흐름출판)

중독은 의지 부족이 아니라 무너진 애착의 신호, 44년 임상 경험으로 풀어낸 중독과 회복의 심리학

장세환2026년 8월 1일 오후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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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그만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술잔을 채우고,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같은 관계를 반복한다. 우리는 이러한 행동을 흔히 의지력 부족이나 습관의 문제로 해석한다. 그러나 『왜 우리는 멈추지 못할까』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정말 의지가 약해서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더 깊은 이유가 존재하는 것일까.

서울대병원 정신전문간호사로 28년, 중독 전문가로 16년 동안 현장을 지켜온 주세진 교수는 중독을 단순한 물질 의존이나 행동 문제로 보지 않는다. 저자는 중독의 뿌리가 어린 시절 형성된 애착의 상처에 있다고 말한다. 신뢰할 수 있는 보호자를 경험하지 못했거나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사람 대신 다른 대상에 의지하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책은 중독을 쾌락의 추구가 아니라 고통으로부터의 도피로 해석한다. 술, 담배, 게임, 스마트폰, 쇼핑, 심지어 과도한 업무나 운동까지도 마음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처음에는 위안을 얻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반복될수록 뇌 안에 특정한 반응 경로가 형성되고, 결국 다른 선택이 어려운 상태에 이르게 된다. 저자는 이를 통해 "왜 멈추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에 신경과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답한다.

특히 이 책은 중독을 개인의 실패나 도덕적 결함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거부한다. 어린 시절의 방임과 통제, 정서적 단절, 외로움과 상처가 어떻게 뇌의 구조와 감정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며, 중독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적응의 결과라고 분석한다. 멈추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하기보다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메시지다.

회복에 대한 관점 역시 독특하다. 저자는 중독 회복이 단순히 특정 행동을 끊는 문제가 아니라 다시 사람과 연결되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감정을 표현해도 거절당하지 않는 경험, 도움을 요청해도 관계가 유지되는 경험이 반복될 때 뇌는 새로운 회로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획득된 안정 애착'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완전히 지우지는 못하더라도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는 가족과 관계의 역할에도 주목한다. 중독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시스템 전체와 연결되어 있으며, 한 사람의 회복이 가족의 오래된 균형을 흔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침묵과 억압, 과도한 책임감 같은 관계의 패턴이 세대를 거쳐 반복되는 과정도 함께 분석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자신의 중독적 행동뿐 아니라 가족과 관계 속에서 형성된 구조를 돌아보게 된다.

주세진 교수는 현재 한국중독전문가협회 슈퍼바이저와 법무부 교정자문위원,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가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중독 예방과 재활 분야에서 활발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오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된 이 책은 학술 이론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사례와 회복 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왜 우리는 멈추지 못할까』는 중독을 더 이상 의지의 문제가 아닌 관계의 문제로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 오늘의 괴로움이 과거의 외로움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는 통찰, 그리고 회복은 혼자 버티는 것이 아니라 다시 연결되는 과정이라는 메시지는 반복되는 행동과 관계의 패턴으로 고통받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위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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