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서사시가 21세기 영화 거장의 손에서 다시 태어났다. 『오디세이 각본집』은 세계적인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연출한 영화 <오디세이>의 오리지널 각본을 담은 책으로, 수천 년 동안 읽혀온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현대적 감각의 대서사로 재구성한 작업의 전모를 보여준다.
영화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 오디세우스가 전쟁이 끝난 뒤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그린다. 끝없는 바다를 떠돌며 괴물과 적대 세력, 신들의 시험에 맞서는 오디세우스의 모험은 인간의 생존 의지와 귀환의 열망을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동시에 왕의 부재 속에서 왕국을 지키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버지의 행방을 좇는 아들 텔레마코스의 이야기가 함께 전개되며 한 가족의 기다림과 운명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이번 각본집은 단순한 영화 대본집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영화에서는 시간적 제약 때문에 드러나지 못했던 장면의 의도와 인물의 심리, 이야기 구조가 활자 형태로 세밀하게 공개된다. 독자들은 놀란 감독이 호메로스의 원전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며, 신화적 상상력과 현대적 드라마가 결합되는 과정을 직접 따라가 볼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방대한 원전을 압축하는 놀란 특유의 서사 감각이다. 1만 2천여 행에 달하는 『오디세이아』를 3시간 분량의 영화로 재탄생시키면서도 원작이 품고 있는 모험과 비극, 인간적 고뇌를 놓치지 않았다.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등장하는 신화의 세계를 단순한 판타지로 소비하지 않고 인간의 선택과 책임, 운명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시킨 점은 놀란 작품 세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메멘토>, <다크 나이트> 3부작,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테넷>, <오펜하이머> 등을 통해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현대 영화계의 대표적 거장이다. 복잡한 서사 구조와 시간 개념에 대한 탐구,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해 왔다. 『오디세이 각본집』은 그러한 창작 철학이 고전 신화와 만났을 때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번역은 국내 1세대 영화 번역가로 평가받는 김은주가 맡았다. 수십 년 동안 할리우드 대표 작품들의 자막 번역을 담당해 온 그는 이번 작업을 통해 놀란의 문체와 대사의 리듬, 그리고 서사적 긴장감을 한국어로 충실히 옮겨내는 데 주력했다.
『오디세이 각본집』은 영화를 이미 본 관객에게는 새로운 해석의 즐거움을, 아직 영화를 접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입문서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한 편의 영화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보여주는 창작의 설계도이자, 고대 신화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로 살아남는 이유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록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