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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목소리 『소프트 사이언스』 신간 출간 (허블, 프래니 최·정새벽)

퀴어와 사이보그, 인간성과 기술의 경계에서 울리는 새로운 시

장세환2026년 6월 9일 오후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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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사이언스.jpg출판사 제공

한국계 미국인 퀴어 시인 프래니 최의 시집 『소프트 사이언스』가 허블에서 출간됐다. 이 작품은 인종, 젠더, 기술이 교차하는 동시대의 시적 실험을 집약한 책으로, SF 시 부문 엘진 상을 수상했으며 람다 문학상, 매사추세츠 도서상, 오드리 로드 상, 빌리버 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프래니 최는 미국 시단에서 가장 독창적인 목소리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는 흑인, 원주민, 아시아계, 라틴계, LGBTQ 시인들이 문학의 중심으로 들어온 2010년대 이후의 흐름 속에서, 시의 형식과 정치성을 동시에 다시 짜는 작업을 이어왔다. 특히 무대에서 길러진 시인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슬램 무대에서 자작 시를 낭송하며 관객과 직접 호흡한 경험은 그의 시가 종이 위에서도 끊임없이 튀어 오르는 호흡으로 살아 있게 한다.

『소프트 사이언스』는 사이보그가 심문을 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여섯 부로 구성된 시집은 「튜링 테스트」 연작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사이보그가 의식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라는 질문에 응답한다. 질문은 점점 사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해가며, 시인은 이민자의 자녀이자 퀴어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인간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던 몸을 사이보그의 형상으로 겹쳐낸다.

흥미로운 대목은 앨런 튜링의 소환이다. 인공지능의 사유를 연 과학자이자 동성애로 박해받았던 퀴어 남성인 튜링을 시인은 “사실은 부드러운 남자였다”고 기록한다. 『소프트 사이언스』는 1950년 튜링의 질문에 70여 년 만에 도착한 퀴어 아시아 사이보그의 응답이기도 하다.

시집은 인터넷 폭력, 인종주의적 언어, 한국어의 잔향, 미국 정치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통과하며 끊임없이 형상을 바꾼다. 「JAEBAL」에서는 한국어 ‘제발’을 영어 속에 음역으로 남겨 부모의 언어와 자신의 정체성을 교차시키고, 「교코의 CPU에 광범위한 손상이 발생한 뒤, 그녀의 언어 파일이 복구되다」에서는 영화 〈엑스 마키나〉 속 침묵당한 여성형 안드로이드에게 목소리를 돌려준다.

그러나 『소프트 사이언스』는 정치적 몸부림만을 담은 시집이 아니다. 후반부 「근일점: 손길의 역사」 연작에서는 계절과 사랑, 몸의 시간을 기록하며 디지털과 자연, 폭력과 다정함을 같은 회로에서 진동시킨다. 시인은 원주민의 달 이름을 따라가며 인간과 자연, 식민주의적 지식의 거리감을 성찰한다.

‘소프트 사이언스’라는 제목은 오랫동안 덜 엄밀한 학문으로 취급된 사회과학·심리학을 가리키는 말이다. 프래니 최는 이를 받아들여 ‘부드러움’을 약함이 아닌 새로운 인식 능력으로 다시 명명한다. 부드러움은 폭력 속에서 다른 회로를 만들어내는 능동적 힘이며, 시집은 이를 노래로 변환한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프래니 최는 “당신 안에서 인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는 게 어떤 건지 기억하고 있을 조각들을 느껴보시기를 바란다”고 적는다. 『소프트 사이언스』는 인간 중심의 언어가 담지 못한 결들을 드러내며, AI 시대에 인간성과 기술의 경계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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