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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 『애도라는 섬』 (권준희 외, 현실문화)

디아스포라와 제주 4·3, 예술로 이어진 애도의 공공성

장세환2026년 5월 28일 오후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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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라는 섬.jpg출판사 제공

현실문화에서 출간된 『애도라는 섬』은 임흥순 작가의 공공예술 프로젝트 메모리얼 샤워를 중심으로, 제주 4·3과 재일 디아스포라의 역사, 그리고 바다를 매개로 이어지는 삶과 죽음을 탐구한다. 이 책은 단순한 기록집을 넘어, 애도를 공동의 실천으로 전환하는 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적이고 감각적인 작업이다.

책은 김동일의 삶과 유품에서 출발한다. 제주 4·3 당시 연락책으로 활동했던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의 삶을 살았다. 그의 옷과 유품은 단순한 개인의 흔적을 넘어, 공동체가 함께 감각하고 나누는 기억의 매개가 된다. 전시와 워크숍, 영화와 게임으로 확장된 프로젝트는 죽은 자의 흔적을 현재의 공동체가 다시 감각하는 장으로 변모한다. 임흥순은 이를 “역사 세례”이자 “기억 내림”이라 표현하며, 개인적 상실을 공동의 짐으로 나누는 예술적 실천을 제안한다.

책에 참여한 필자들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디아스포라와 기억을 사유한다. 김연희는 재일 정체성과 관계적 존재론을, 권준희는 멀리서 떠나는 사람들의 존재 방식을, 윤여일은 제주 여성들의 바다를, 이솔은 디아스포라와 바다의 몸을, 히비노 민용은 평범한 자이니치의 삶을 통해 문제를 확장한다. 이들의 글은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면서도 공통적으로 바다를 경계와 이동, 차별과 연대, 기억과 생존의 장소로 다시 읽는다. 그 결과 제주 4·3과 재일의 역사는 분리된 사건이 아니라, 군도적 상상력 속에서 서로 울리고 이어지는 기억의 장으로 나타난다.

『애도라는 섬』은 기록을 넘어 살아 움직이는 기억을 탐구한다. 전시장에서 옷은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감각적 매개가 되고, 워크숍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몸으로 건너가며, 영화 속에서는 상실과 위로를 담은 시적인 물질로 변한다. 기억은 단순히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하고 관계 맺으며 현재 속에서 되살아난다.

이 책은 예술이 애도를 회고의 언어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적 실천으로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바다는 떠남과 귀환, 산 자와 죽은 자, 제주와 일본을 잇는 관계적 공간으로 작동하며, 독자에게 경계 너머의 관계를 다시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애도라는 섬』은 디아스포라와 기억, 애도의 공공성을 사유하는 새로운 지적 지도이자, 예술이 사회적 형식으로서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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