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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인간을 어떻게 만들고 지우는가”, 『이름의 빈자리에』 출간(권혁란, 한겨레출판)
괴물과 여성, 망자와 무명의 존재들로 읽어낸 ‘호명’의 인문학
출판사 제공
아이가 태어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이름을 고민한다. 누군가는 태명부터 준비하고, 누군가는 한 글자 한 글자 뜻을 따져 이름을 붙인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한 존재가 세상에 도착했음을 인정하는 최초의 표식이기 때문이다. 권혁란 작가의 신간 『이름의 빈자리에』는 바로 그 이름의 의미를 파고드는 인문 에세이다.
한겨레출판에서 출간한 『이름의 빈자리에』는 “인간에게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책은 문학과 영화, 시와 대중문화 속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을 따라가며 이름이 인간의 삶과 관계, 정체성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탐색한다.
저자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속 이름 없는 괴물, 『시녀 이야기』 속 이름을 빼앗긴 여성들, 김소월의 시 「초혼」 속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 등을 통해 인간과 이름의 관계를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특히 이름조차 받지 못한 존재들이 겪는 고독과 배제의 감각을 세밀하게 짚어낸다.
“당신은 내게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어.”
작가는 이름이 단순한 명칭을 넘어 인간을 사회 속에 존재하게 만드는 장치라고 말한다. 이름 없는 존재는 독립된 자아로 인정받기 어렵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좌표 역시 잃게 된다. 영화 〈송곳니〉 속 이름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의 사례를 통해, 이름의 부재가 어떻게 인간성을 지워가는지도 분석한다.
책은 단지 상실의 이야기만을 다루지 않는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어떻게 사랑과 연결의 감각이 되는지도 함께 조명한다. 『늦가을 무민 골짜기』,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윤희에게〉 속 장면들을 통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일이 곧 한 존재를 자신의 세계 안으로 들이는 행위임을 보여준다.
“내 존재를 일컫는 고유명사인 이름을 서로 바꿔 불러준다는 것은 어떤 걸까.”
3부에서는 죽음 이후에도 남는 이름의 힘을 이야기한다. 떠난 사람의 이름을 반복해 부르는 행위가 남겨진 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그리고 이름이 어떻게 상실을 견디게 하는 마지막 언어가 되는지를 따라간다. 김소월의 「초혼」과 장례 풍경을 겹쳐 읽어내는 대목은 오래된 슬픔의 감각을 다시 불러낸다.
또한 책은 입양과 개명, 정체성의 문제까지 확장된다. 덴마크의 한국계 입양인 작가 마야 리 랑그바드의 이야기를 통해, 이름을 바꾸고 떠나는 일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짚는다.
권혁란 작가는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등을 통해 여성과 가족, 상실의 문제를 꾸준히 탐구해왔다. 이번 책에서는 이름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언어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간다.
『이름의 빈자리에』는 결국 묻는다. 우리는 왜 누군가에게 불리고 싶어 하는가. 그리고 왜 끝내 자신의 이름을 붙들고 살아가려 하는가. 책장을 덮고 나면 독자는 문득 자기 이름을 천천히 불러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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