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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왜 사람을 걷게 하는가”, 『걷는 회사』 출간(이상교·허지연, 스토리두잉)

성과 대신 침묵과 순례를 택한 기업의 특별한 실험

장세환2026년 5월 26일 오후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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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회사.jpg출판사 제공

회의도 없다. 발표도 없다. 스마트폰도 노트북도 내려놓는다. 대신 하루 20킬로미터 가까운 길을 묵묵히 걷는다. 일본 시코쿠 순례길 위에서 직장인들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걷는 회사』는 그 낯설고도 묵직한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스토리두잉에서 출간한 『걷는 회사』는 치과용 의료기기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 바텍 네트웍스의 독특한 조직 문화를 다룬다. 이 회사는 직원들을 일본 시코쿠 순례길로 보내 닷새 동안 걷게 한다. 성과 회의도, 워크숍도, 팀빌딩 게임도 없다. 그저 걷고, 침묵하고, 생각한다.

책은 전직 매일경제 기자인 이상교 작가와 바텍이우홀딩스 홍보팀장 허지연 작가가 함께 쓴 기록이다. 단순한 기업 성공담이 아니라, 길 위에서 무너지고 다시 자신을 마주한 직장인들의 고백을 담아낸다.

저자들은 “하루에 20km 가까이 말없이 걷는 일정만이 존재한다. ‘생각하지 말고 걷는 하루’. 출발하기 전 직원들이 받아 든 일정의 전부였다”라고 적는다.

책 속 사람들은 처음엔 불안해한다. 노트북을 내려놓는 것조차 견디기 힘들어한다. 늘 무언가를 책임지고 결정하며 살아온 이들에게 침묵은 낯설고 두려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 위에서 그들은 점점 자신이 ‘역할’로만 살아왔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나는 누구인가. 관계로 정의되지 않는 나를 정의할 수 있는가.”라는 문장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처럼 반복된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성과’보다 ‘사람’을 이야기하는 순간들이다. 한 참가자는 순례길 끝에서 자신이 가족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통제하려 했음을 깨닫는다. 또 다른 참가자는 “내가 참 못난 놈이구나… 내가 이토록 징그러운 이기주의자였구나 싶어 걷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더라고요”라고 털어놓는다.

책은 이런 고백들을 통해 오늘날 조직과 노동의 방향을 되묻는다. 효율과 속도, 경쟁과 통제가 당연해진 시대에 사람은 얼마나 쉽게 소진되고 있는가. 그리고 기업은 과연 사람을 성장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닳게 만들고 있는가.

『걷는 회사』는 그 질문을 거창한 경영 이론 대신 ‘걷기’라는 원초적 행위로 풀어낸다. 말을 줄이고 속도를 늦추자, 오히려 서로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화를 내서 얻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라는 한 참가자의 변화는 조직문화의 변화가 결국 사람의 내면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책은 순례를 종교적 체험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시코쿠의 88개 사찰은 “그저 이정표일 뿐 종교적인 의미는 없다”고 설명한다. 대신 순례는 “낯선 길에서 삶의 방향을 다시 묻는 과정”으로 제시된다.

332쪽 분량의 이 책은 조직 혁신이나 자기계발의 공식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오래 달려온 사람들이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기록한다. 그래서 『걷는 회사』는 기업 경영서이면서 동시에 관계와 삶, 책임과 사랑에 관한 에세이처럼 읽힌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들은 이렇게 적는다. “그 변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작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삶에서는 그런 작은 변화들이 오래 남는다.”

빠르게 달리는 법만 배우는 시대에, 이 책은 어쩌면 가장 낯선 질문 하나를 건넨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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