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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의 꿈을 품은 사람들”, 『재규어의 꿈』 출간(미겔 본푸아·윤진, 복복서가)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되살린 베네수엘라의 역사와 한 가족의 찬란한 연대기
출판사 제공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상담을 하고, 병원 예약부터 고객 응대까지 처리하는 시대다. 사람들은 이제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까”를 묻는다. 하지만 『사람의 마지막 직업』은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말한다. 살아남는 것은 특정 직업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연결노동’이라는 것이다.
추수밭에서 출간한 이 책은 미국 사회학자 앨리슨 J. 퓨가 간호사, 교사, 상담사, 목사, 코치 등 100여 명의 노동자들을 300시간 넘게 인터뷰하며 써 내려간 연구서다. 기술과 자동화가 사회 전반을 뒤덮는 시대에도 끝내 인간에게 남겨질 노동의 의미를 탐색한다.
저자는 연결노동을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그렇게 이해한 바를 거울처럼 비추어주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상담과 돌봄, 교육 같은 분야는 물론이고 매니저, 판매원, 법률가, 경찰 업무까지도 결국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감정적·관계적 노동 위에서 작동한다는 설명이다.
책은 무엇보다 이 노동이 “너무나 특별하고 중요하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정과 보상을 거의 받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여성 노동으로 치부되며 과소평가돼온 현실을 함께 짚어낸다.
인상적인 대목은 AI 시대의 불안을 단순한 기술 공포로 다루지 않는 점이다. 저자는 자동화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미래보다, 인간이 점점 “대본화되고 형식화된 관계” 속에 갇히는 상황을 더 위험하게 바라본다.
책 속 간호사 사례는 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보험사들은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호사의 상담 업무를 자동화하려 한다. 그러나 저자는 문제의 핵심이 사람 부족 자체가 아니라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과 관계를 허락하지 않는 시스템”에 있다고 말한다. “사람한테는 월급을 줘야 하잖아요”라는 인터뷰 속 냉정한 문장은 오늘의 노동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노숙인의 발을 씻겨주는 간호사 ‘버디’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는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제가 당신을 보고 있어요. 당신을 인정하고 있어요”라는 경험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바로 그 순간이 연결노동의 본질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을 효율의 대상이 아니라 존엄한 존재로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이다.
플랫폼 노동과 긱 경제에 대한 분석도 눈길을 끈다. 단기 계약과 반복되는 교체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서로를 “일회용 관계”로 대하게 된다. 저자는 이런 환경이 결국 인간적 연결 자체를 소모시키고 있다고 경고한다.
책의 후반부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아간다. 기술이 인간의 시간을 절약하는 방향으로만 발전할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잃고 있는가. 저자는 “효율성을 위해 선택한 대본화와 자동화가 오히려 인간을 로봇처럼 만든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책이 제안하는 미래는 의외로 단순하다. 더 많은 연결, 더 많은 접촉, 더 많은 대화다. 저자는 “헤드폰을 끼고 모든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사회” 대신, 서로의 감정과 고통을 읽어내는 사회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536쪽에 달하는 이 책은 AI 비관론이나 기술 혐오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노동이 왜 단순한 생산성을 넘어 관계와 존엄의 문제인지 차분하게 묻는다. 자동화가 빠르게 세상을 재편하는 지금, 책은 인간이 끝내 포기해서는 안 되는 마지막 영역을 조용히 가리킨다. 바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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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의 꿈을 품은 사람들”, 『재규어의 꿈』 출간(미겔 본푸아·윤진, 복복서가)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되살린 베네수엘라의 역사와 한 가족의 찬란한 연대기
거리의 부랑아였던 소년은 전설적인 외과의사가 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롱받던 학생은 지역 최초의 여성 의사가 된다. 혁명과 독재, 사랑과 이별, 망명과 귀환이 뒤엉킨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끝내 자기 운명을 길들여지지 않은 재규어처럼 밀고 나간다. 프랑스 문단의 젊은 거장 미겔 본푸아가 쓴 장편소설 『재규어의 꿈』이 복복서가에서 출간됐다.
이 작품은 2024년 페미나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프랑스 문단의 주목을 받은 소설이다. 프랑스계 칠레인 아버지와 베네수엘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가 자신의 모계 가족사를 바탕으로 써 내려간 작품으로, 베네수엘라의 현대사와 한 가족의 삶을 마술적 리얼리즘의 문체로 엮어냈다.
소설은 안토니오, 아나 마리아, 베네수엘라, 크리스토발로 이어지는 3대 가족의 서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안토니오는 밑바닥 인생을 지나 위대한 외과의사가 되고, 아나 마리아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싸우며 의사의 길을 개척한다. 이후 딸 베네수엘라는 자신의 삶을 위해 대양을 건너고, 마지막으로 크리스토발은 어머니의 나라로 돌아와 이 모든 이야기를 기록한다.
특히 작품은 인물들의 삶을 단순한 성장담으로 그리지 않는다. 시대와 사회, 폭력과 혁명이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흔드는지 집요하게 따라간다. 동시에 그 격랑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존엄과 사랑을 지켜내는지를 시적인 문장으로 길어 올린다.
책 속 문장들은 강렬한 이미지와 리듬으로 독자를 붙든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롱받던 아나 마리아가 “자신이 두 가지 싸움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는 의학을 위한 싸움이었고, 하나는 여성을 위한 싸움이었다”라고 자각하는 장면은 시대의 억압을 정면으로 통과하는 인물의 의지를 압축해 보여준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안토니오가 딸에게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의 노예가 되고, 하지 않은 말에 대해서는 주인이 된다”라고 말한다. 짧지만 오래 남는 이 문장은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삶의 철학처럼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본푸아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이다. 망고나무 위에서 살아가는 여인, 유령처럼 복도를 지나가는 존재들, 재규어의 후예라는 전설은 현실과 환상을 자연스럽게 겹쳐놓는다. 그러나 그 환상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폭력과 빈곤, 혁명과 디아스포라의 기억을 견디기 위한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력으로 기능한다.
소설의 배경인 마라카이보는 석유 개발과 독재, 혁명과 부패가 뒤엉킨 베네수엘라 현대사의 축소판처럼 등장한다. 작품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동시에 한 나라의 역사를 통과한다. 그래서 『재규어의 꿈』은 단순한 가족 연대기를 넘어, 한 시대 전체를 노래하는 서사로 읽힌다.
특히 크리스토발이 “책을 읽는 것은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은 이 작품의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떠돌고 흔들리는 삶 속에서도 끝내 인간을 붙잡아주는 것은 이야기와 기억이라는 믿음이다.
392쪽 분량의 이 소설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떠올리게 하는 풍요로운 서사와 동시에, 미겔 본푸아만의 생생한 리듬과 감각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역사와 신화, 사랑과 혁명, 상실과 귀환이 뒤섞인 이 거대한 이야기 끝에서 독자는 결국 한 문장과 마주하게 된다. “우린 모두가 재규어의 꿈이 낳은 자식들”이라는 선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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