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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이름 뒤에 지워졌던 여성들”, 『로마의 황후들』 출간(조셉 맥케이브·김연수, 히스토리퀸)

권력의 그림자에 머물렀던 로마 황후들…여성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제국의 역사

장세환2026년 5월 26일 오후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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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황후들.jpg출판사 제공

로마 제국의 역사는 오랫동안 황제들의 이름으로 기록돼 왔다. 아우구스투스,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러나 그 권력의 곁에는 제국의 방향을 움직이고, 때로는 황제를 넘어 정치의 중심에 섰던 여성들이 있었다. 히스토리퀸이 출간한 『로마의 황후들』은 바로 그 잊힌 여성들의 얼굴을 다시 불러내는 책이다.

영국 작가이자 여성 참정권 옹호자였던 조셉 맥케이브가 1911년 집필한 이 책은 로마 제국을 황제 중심이 아닌 황후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낸다. 국내에는 처음 번역 출간됐다.

책에는 남편을 도와 제국의 기틀을 다진 리비아 드루실라부터, 권력 암투 속에서 기록말살형을 당한 메살리나, 아들을 황위에 올리기 위해 정치 전면에 나섰던 소 아그리피나, ‘시리아의 여왕’이라 불린 율리아 돔나, 쇠락하는 서로마를 끝까지 지켜낸 갈라 플라키디아까지 로마사의 굴곡 속 여성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로마 황실을 단순한 궁정 스캔들이 아니라 “군주의 아내가 권력을 공유하게 된 순간부터 시작된 역사”로 바라본다. 책은 “평범한 로마 여성일지라도 왕좌의 빛나는 높이로 솟아오른 인물이라면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황후들을 황제의 부속물이 아닌 독립된 정치적 존재로 다루겠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특히 리비아 드루실라를 다루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저자는 그녀가 “편협한 보수주의자가 아니었다”며, 신전을 건립하고 국정에 자문하며 아우구스투스에게 “신중하고 유익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평가한다. 흔히 황제 뒤에 숨은 여성으로 묘사됐던 리비아를 실질적인 정치 동반자로 복원하는 셈이다.

플로티나를 향한 시선도 흥미롭다. 황궁 계단을 오르며 “오늘 여기 들어왔지만, 때가 되면 떠나게 될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는 장면은 권력 앞에서 절제와 품위를 잃지 않았던 한 황후의 태도를 보여준다. 제국 최대 영토를 이룩한 트라야누스 시대의 안정감 뒤에 어떤 인간적 균형감각이 있었는지를 엿보게 한다.

율리아 돔나에 대한 묘사에서는 로마 중심 역사관을 넘어 동방 여성의 존재감까지 드러난다. 저자는 그녀의 얼굴에서 “시리아 불로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읽어내며, 강인함과 판단력을 겸비한 정치적 인물로 기록한다.

책은 황후들을 이상화하지도 않는다. 소 아그리피나의 권력욕, 파우스티나를 둘러싼 의혹, 제국 말기의 무능과 혼란까지 함께 서술한다. 하지만 바로 그 복합성이야말로 이 책의 핵심이다. 황후들은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 이전에, 권력과 욕망, 사랑과 생존 속에서 흔들리던 인간으로 복원된다.

출판사 히스토리퀸은 유럽 왕실 여성사를 꾸준히 소개해온 곳으로, 이번 책 역시 “황후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로마사”라는 기획 아래 선보였다. 책은 단순한 여성사나 궁정 비화에 머물지 않고, 제국의 흥망이 여성들의 삶과 어떻게 맞물렸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478쪽에 달하는 분량 속에는 로마의 황금기와 몰락, 전쟁과 암투, 궁정의 화려함과 고독이 교차한다. 무엇보다 이름만 남았던 황후들의 얼굴을 오늘의 독자 앞에 다시 세운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황제들의 연대기 뒤편에서 지워졌던 목소리가 비로소 역사 속에서 말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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