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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너머의 괴이와 친구가 된다면”, 『입주 조건 : 옆집에 사는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내세요』 출간(네후네 하야세, 리드비)

“무서운데 따뜻하다”…일상과 공포가 뒤엉킨 일본발 ‘치유 호러’ 국내 상륙

장세환2026년 5월 21일 오후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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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 조건 옆집에 사는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내세요.jpg출판사 제공

엘리베이터는 텅 비어 있는데 정원 초과 벨이 울리고, 우편함에는 머리카락 수십 가닥이 들어 있다. 그런데도 그 맨션을 떠날 수 없다. 살아남으려면 옆집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장르 불명 호러”라는 반응을 불러모았던 네후네 하야세의 소설 『입주 조건 : 옆집에 사는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내세요』가 국내에 출간됐다.

리드비가 선보인 이번 작품은 인간이 아닌 존재와의 기묘한 공동생활을 그린 일상형 호러 소설이다. 2023년 일본 호러 플랫폼 ‘가쿠요무’에서 연재되며 입소문을 탔고, 이후 단행본과 코믹스로까지 확장됐다. 일본 현지에서는 “무섭지만 이상하게 위로받는다”, “소름 끼치는데 웃게 된다”는 반응과 함께 ‘치유 호러’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삶의 벼랑 끝에 선 청년 다카히로가 있다. 전 재산을 잃고 월세조차 감당할 수 없는 그는 어느 날 기묘한 구인 광고를 발견한다. “지금 당장 인생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사람 모집 중!”이라는 문구 아래 적힌 조건은 단 하나. “옆집에 사는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낼 것.” 그렇게 다카히로는 이미 23명이 도망쳤다는 맨션에 입주하게 된다.

문제는 그 이웃이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체불명의 존재는 매일 밤 다카히로에게 괴담을 들려주고,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조용히 묻는다. “……무서웠어?” 그 순간부터 현실과 괴담의 경계는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소설은 짧은 괴담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택한다. 《아는 사람》에서는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경고 대신, “그 수상한 사람은 매번 아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섬뜩한 문장이 등장한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모르면 알아주세요”라는 말을 반복하는 존재가 독자를 숨 막히게 몰아붙인다.

특히 작품은 공포를 단순히 ‘놀래키는 장치’로 소비하지 않는다. 현실의 외로움과 고립감을 집요하게 끌어안는다. 월세와 생계, 인간관계에 지친 청년에게 오히려 괴이들이 있는 맨션이 유일한 안식처처럼 느껴진다는 설정은 현대인의 불안과도 맞닿아 있다.

기묘한 장면들도 오래 잔상처럼 남는다. 괴물이 젤리를 먹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슈퍼마켓으로 달려가는 장면, “701호 주민에게는 생일을 알려주지 말라”는 규칙, 사진 속 소년이 점점 가까워지는 공포는 익숙한 일상을 천천히 잠식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독특한 이유는 공포 속에 묘한 온기를 숨겨두었기 때문이다. 괴이들은 젤리를 선물 받고, 젠가를 하며, 새해 떡을 건넨다. 다카히로 역시 두려움 속에서 조금씩 삶의 의지를 회복한다. 출판사는 이를 두고 “벽 하나를 두고 피어오르는 따뜻한 공포와 기묘한 희망”이라고 설명한다.

일본 언론의 반응도 뜨겁다. 아사히신문은 이 작품을 “2025년 일본 호러 붐의 최전선”이라고 평가했고, 호러 작가 세스지는 “무서운데 따뜻하고, 공포스러운데 사랑스럽다”며 “호러의 새로운 경지를 본 기분”이라고 호평했다.

최근 한국 독자들 사이에서도 ‘일상 침식형 공포’가 새로운 흐름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입주 조건 : 옆집에 사는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내세요』는 익숙한 공간을 가장 낯선 장소로 바꾸는 감각으로 눈길을 끈다. 무섭지만 이상하게 머물고 싶어지는 맨션. 이 기묘한 이야기의 문은 이미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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