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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붙이지 못한 마음에도 자리가 있다”, 『이름 없는 감정들의 사전』 출간(이아코포 멜리오, 서교책방)
세계 여러 언어 속 감정 단어 200개로 마음의 미세한 결을 들여다보다
출판사 제공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을 기다릴 때의 조급함, 특정한 사람 곁에서만 느끼는 안정감, 곧 무언가 끝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겨울 끝에 햇살이 처음 따뜻하게 닿는 순간의 평온함 같은 감정들이다. 분명히 느끼지만 이름을 알지 못해 그냥 지나쳐 온 마음들에 말을 붙여주는 책 『이름 없는 감정들의 사전』이 서교책방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이탈리아 작가이자 인권·사회권·시민권 운동가인 이아코포 멜리오가 세계 여러 언어권에서 길어 올린 감정 단어 200개를 모은 에세이형 사전이다. 저자는 소셜 미디어 칼럼 ‘말은 오래 남는다’를 연재하며, 다른 언어로는 쉽게 옮기기 어려운 말들을 소개해 왔다. 그 단어들은 낯설지만 이상하게 친숙하다. 우리가 이미 느꼈지만 미처 부르지 못했던 마음들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중국어 ‘슈’, 일본어 ‘이루수’, 하와이어 ‘아키히’, 노르웨이어 ‘포렐스케트’, 스코트어 ‘타르틀’ 같은 단어들이 등장한다.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마음, 누군가 문을 두드릴 때 집에 없는 척하고 싶은 순간, 길 안내를 듣고도 곧바로 잊어버리는 당혹감, 사랑에 빠졌을 때의 지극한 행복감, 익숙한 사람의 이름이 갑자기 떠오르지 않을 때의 머뭇거림까지, 책은 인간 감정의 작고 세밀한 순간들을 다정하게 포착한다.
저자는 감정에 이름이 생기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마음이 나만의 혼란이 아니라 세계 어딘가의 누군가도 느꼈던 감정이라는 사실은 독자에게 뜻밖의 위안을 준다. 단어는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흩어져 있던 마음이 머물 자리를 만들어주는 도구가 된다.
『이름 없는 감정들의 사전』은 언어학 책이면서 동시에 마음을 읽는 에세이다. 한 단어 한 단어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던 감정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책은 정확한 번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떤 감정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이다.
추천사를 쓴 김겨울 작가는 “어떤 감정은 단어를 통해 비로소 자리를 찾는다”고 말했고, 김신지 작가는 “세상 모든 마음에는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평했다. 이처럼 이 책은 사전의 형식을 빌렸지만, 독자에게는 조용한 위로의 책으로 다가간다.
이아코포 멜리오는 평등과 환경, 인권 문제를 꾸준히 다뤄온 작가다. 그의 시선은 이 책에서도 이어진다. 이름 없는 감정을 호명하는 일은 결국 보이지 않는 존재를 세상 안으로 불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정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부를 말을 몰랐을 뿐인지도 모른다. 『이름 없는 감정들의 사전』은 그 잃어버린 말들을 하나씩 찾아 건네며, 독자의 마음속 오래된 침묵을 조심스럽게 열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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