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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시간 끝에 남은 우정의 빛”, 『유리 조각 시간』 출간(성수진, 나무옆의자)

제2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상처와 기억, 재회와 치유를 섬세하게 그려낸 성장 서사

최준혁2026년 5월 15일 오후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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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조각 시간.jpg출판사 제공

학창 시절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잊고 싶은 상처로 남고, 또 누군가에겐 끝내 돌아가고 싶은 한 시절의 빛으로 남는다. 제2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유리 조각 시간』은 바로 그 흔들리던 청소년기의 감정과 상처를 다시 꺼내 들며, 관계와 기억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다시 이어 붙이는지를 조용하고도 깊게 들여다보는 소설이다.

소설은 간호사 유영이 해외로 떠나기 전 병원을 그만두던 날, 오래전 연락이 끊긴 친구 경진에게서 한 통의 메일을 받으며 시작된다. 메일 속에는 ‘유영’을 화자로 삼은 소설이 담겨 있다. 경진의 문장을 읽어 내려가던 유영은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의 기억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채팅 사이트에서 처음 만났던 두 사람의 우정, 가족 안에서 감당해야 했던 상실, 설명할 수 없던 외로움과 결핍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 성수진은 이 작품에서 거대한 사건보다 감정의 미세한 결을 따라간다. “엄마야말로 내가 죽어야 나를 이해해줄 것 같았다”는 문장처럼, 인물들의 내면에는 오래 봉인된 슬픔과 인정받고 싶은 갈망이 층층이 쌓여 있다. 특히 이미 세상을 떠난 언니 ‘유경’의 그림자 아래 살아온 유영의 감정은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조차 완전히 위로받지 못한 상처를 절절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상처를 단순히 극복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은 아픔을 지워버리려 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마모되고 둥글어지는 감정의 과정을 따라간다. 제목 속 ‘유리 조각’ 역시 그런 의미를 품는다. 한때는 손을 베일 만큼 날카로웠지만, 긴 시간 파도와 바람을 견디며 결국 빛나는 조각으로 남는 존재들 말이다.

심사위원단 역시 이 작품의 힘을 “평범한 장면을 매혹적으로 만드는 디테일의 힘”이라고 평가했다. 은희경 소설가는 추천사에서 “진심은 긴 여정을 마치고 회귀해 유리 조각처럼 손 안에서 빛난다”고 평했으며, 하성란 소설가는 “부서졌기에 볼 수 있는 삶의 찬란한 순간이 이 소설의 형식과 맞물린다”고 말했다.

성수진 작가는 2024년 단편소설 「눈사람들, 눈사람들」로 제1회 림 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첫 장편소설 『유리 조각 시간』으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문학의 새로운 목소리로 주목받고 있다. 작가는 절제된 문장과 섬세한 감정선으로, 상실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차분히 응시한다.

『유리 조각 시간』은 결국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누군가의 곁에 남아 있으려는 마음이 인간을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전한다. 오래 쓸리고 닳아도 끝내 빛을 잃지 않는 유리 조각처럼, 이 소설 역시 독자의 마음 한편에 오래 남아 조용히 반짝이는 작품으로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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