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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골목 끝에서, 상상은 다시 불을 켰다 『환상 상점』 출간(잉크잼)

낡은 간판과 오래된 포렴, 골목 끝 작은 불빛이 살아 있는 상상의 해안 마을 ‘나베마치’

장세환2026년 5월 13일 오후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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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상점.jpg출판사 제공

낡은 간판 아래 불이 켜지고, 오래된 포렴이 바람에 흔들린다. 누군가는 막 소바를 먹고 나왔고, 누군가는 빵 냄새를 따라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실재하지 않는 마을인데도 이상하게 기억 속 풍경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곳이 너무 정성스럽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배경 미술로 이름을 알린 마테우시 우르바노비치가 두 번째 작품집 『환상 상점』으로 돌아왔다. 전작 『도쿄 상점』이 사라져 가는 도쿄의 실제 가게들을 기록했다면, 이번에는 작가의 상상 속 해안 마을 ‘나베마치’를 무대로 삼았다.

출발점은 이미 철거된 한 안경점이었다. 사라진 공간 앞에서 느낀 허탈함은 현실을 기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머물고 싶은 장소를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상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탄생한 나베마치에는 두부 가게와 화방, 우산 가게와 찻집, 음반 가게와 타이야키 가게까지 모두 40개의 상점이 자리 잡고 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단순한 일러스트집이라기보다 하나의 생활 세계를 들여다보는 느낌이 강하다. 오래된 기와지붕 아래 걸린 작은 간판,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조명, 가게 구석에 놓인 소품 하나까지 저마다의 시간을 품고 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사진관”, “서핑을 마친 사람들이 들르는 빵집”, “늘 북적이는 레트로 음반 가게” 같은 설명은 그림 속 공간에 자연스럽게 숨을 불어넣는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다. 작가는 가게 외형만 그리지 않는다. 점주의 성격과 하루의 동선, 손님들의 생활 방식까지 먼저 상상한 뒤 그림을 완성한다. 그래서 ‘라쿠노차야 찻집’의 찻주전자 장식이나 ‘코너 레코드’의 빼곡한 음반 진열대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척처럼 느껴진다.

수채화 특유의 따뜻한 질감도 책 전체를 감싼다. 화려한 색보다 바랜 간판의 결, 오래된 벽의 그림자, 늦은 오후 골목의 공기 같은 것들이 더 오래 남는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마다 독자는 어느새 나베마치의 주민처럼 거리를 걷게 된다.

『환상 상점』은 상상을 그린 작품집이지만, 이상하게도 사라져 가는 현실의 풍경을 더 선명하게 떠올리게 한다. 오래된 가게 하나가 문을 닫을 때 함께 사라지는 냄새와 기억, 사람들의 시간을 붙잡아 두려는 마음이 페이지마다 천천히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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