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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건네는 자비의 자리, 『무담시』 (현봉, 덕주)

송광사 방장 현봉 대종사의 법문과 수행 기록을 담은 608쪽 법문집

장세환2026년 5월 7일 오전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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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담시.jpg출판사 제공

왜 어떤 스님은 새벽마다 직접 화장실을 청소하고 낙엽을 쓸었을까. 『무담시』는 그 질문에서 시작되는 책이다. 말보다 삶으로 수행을 보여준 현봉 대종사의 흔적이 이 한 권 안에 담겼다.

덕주에서 출간된 『무담시』는 조계총림 송광사 제7대 방장 현봉 대종사의 법문과 산문, 인터뷰 등을 엮은 법문집이다. 2024년 입적한 스님의 생전 가르침을 정리한 책으로, 전체 분량만 600쪽이 넘는다.

책 제목인 ‘무담시’는 전라도 사투리로 “이유 없다”는 뜻이다. 동시에 불교에서 말하는 무분별의 자비를 가리킨다. 차별이나 계산 없이 자연스럽게 행하는 마음, 그것이 스님이 평생 강조해 온 수행의 태도였다고 책은 설명한다.

구성은 모두 4부로 나뉜다. 1부에는 송광사 대중을 향한 상당법어가 실렸고, 2부에는 일반 신도와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 법문이 담겼다. 3부는 사찰 소식지에 연재했던 산문과 기고문, 4부는 여러 매체 인터뷰를 모았다. 수행 이야기뿐 아니라 한글, 암각화, 고려대장경, 선차 문화 등 한국 불교와 전통문화 전반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이어진다.

현봉 스님의 법문은 어렵고 추상적인 선문답에 머물지 않는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없다. 지금 바로 여기 있는데 무슨 길이 있겠느냐”, “밖에서 찾지 말라” 같은 짧고 단단한 문장으로 삶과 수행을 풀어낸다. 때로는 컴퓨터 초기화에 빗대어 마음속 망상을 비워야 한다고 설명하는 등 현대적인 비유도 자주 등장한다.

특히 이 책은 스님의 일상을 함께 기록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좌선과 법문뿐 아니라 직접 울력을 하고 두엄을 뒤집으며 살아온 수행자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수행이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지금 서 있는 자리의 태도라는 메시지가 반복해서 흐른다.

책 곳곳에는 송광사의 사계절 풍경과 수행 현장을 담은 사진들도 함께 실렸다. 단순한 법어집이라기보다 한 시대 선지식의 삶 전체를 기록한 아카이브에 가깝다.

현봉 스님은 1974년 송광사에 입산해 구산 대종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송광사 주지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등을 지냈으며, 2019년 조계총림 송광사 제7대 방장으로 추대됐다.

삶의 방향을 잃었다고 느끼는 시대일수록, “지금 바로 여기”를 말하는 오래된 문장이 더 또렷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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