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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끈한 미래를 거부한 불온한 SF, 『스즈키 이즈미 SF 전집』 (스즈키 이즈미, 마르코폴로)
70년대 일본 언더그라운드 감각으로 다시 읽는 스즈키 이즈미 세계
출판사 제공
미래를 상상한 많은 SF는 반짝이는 금속 도시나 거대한 디스토피아를 그려 왔다. 하지만 스즈키 이즈미의 미래는 다르다. 축축하고 불안하며, 화려한 네온 아래 외로움이 가라앉아 있다. 『스즈키 이즈미 SF 전집』은 그 낯설고도 기묘한 세계를 한 권으로 묶어낸 책이다.
마르코폴로에서 출간된 『스즈키 이즈미 SF 전집』은 일본 작가 스즈키 이즈미의 SF 작품들을 집대성한 전집이다. 대표작 ‘여자와 여자의 세상’을 비롯해 ‘악의가 가득’, ‘물의 기억’, ‘Love of Speed’ 등 다수의 작품이 수록됐다. 분량만 1000쪽이 넘는 대형 양장본이다.
스즈키 이즈미는 1970년대 일본 언더그라운드 문화 한복판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모델과 배우, 작가로 활동하며 당시 일본 대중문화의 가장 급진적인 감각을 몸으로 통과했다. 그의 작품 역시 기존 일본 SF 문법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작품 속 미래는 기술의 발전보다 인간의 욕망과 고립, 젠더 권력과 불안을 더 집요하게 파고든다. 특히 ‘여자와 여자의 세상’에서는 남성이 사라진 사회를 그리며 기존 남성 중심 SF가 구축해 온 미래 이미지를 뒤집는다. 스즈키 이즈미에게 미래는 과학 발전의 결과물이 아니라 억눌렸던 감각과 욕망이 드러나는 공간에 가깝다.
그의 소설에는 약물과 환각, 무너진 도시, 외계 존재와 사회 부적응자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기괴함을 위한 장치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고립된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드러내기 위한 방식에 더 가깝다. 건조하고 차가운 문장 아래에는 세상에서 밀려난 존재들을 향한 묘한 연민도 깔려 있다.
이번 전집은 최근 영어권에서 다시 조명되고 있는 스즈키 이즈미 세계를 국내 독자에게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원작자인 앤디 위어를 비롯해 여러 작가와 평론가들이 그의 작품에 대해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스즈키 이즈미는 1986년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소설 속 풍경은 오히려 지금 시대에 더 가까워 보인다. 현실을 견디기 위해 환상에 기대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고립은 더 짙어지는 세계. 전집 속 인물들이 바라보던 네온빛 도시는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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