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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통찰을 잇는 식물학 에세이, 『식물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출간 (이일하, 초봄책방)
식물의 느린 리듬을 통해 인간의 시간 감각을 다시 묻는 과학적 사유와 관찰의 기록
신간은 식물의 ‘느림’을 단순한 정지로 보지 않고, 그 속에 깃든 적응 전략과 시간성을 촘촘히 해석한다. 서울대 이일하 교수가 분자·발달·생태 수준의 연구 성과를 대중적 문장으로 엮어, 잎·뿌리·꽃이 주고받는 신호망을 계절과 세대의 리듬으로 연결해 보인다. 플로리겐과 춘화처리, 옥신의 극성, 굴중성 같은 전문 개념은 실험적 근거와 관찰 사례로 풀어 설명되며, 식물의 ‘움직임’이 생장과 발달을 통해 어떻게 구현되는지 보여 준다.
중반부는 발아에서 개화에 이르는 생장 과정을 따라가며 식물의 시간 축을 구체화한다. 잎의 배열과 꽃 기관의 수학적 패턴, 생체시계의 분자적 작동 원리는 교실 수업이나 정원 관찰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관찰 포인트로 제시된다. 후반부에서는 근균 공생과 곤충과의 화학적 소통, 품종 개량과 유전자 편집의 윤리적 쟁점까지 확장해 과학적 이해를 사회적 논의와 연결한다. 특히 GMO와 GE(유전자 편집) 기술을 둘러싼 과학적 사실과 규제 논의는 독자가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균형 있게 판단하도록 돕는다.
문체는 학자의 정확성을 유지하면서도 사유적 에세이의 호흡을 잃지 않는다. 전문 용어를 배제하지 않되 비전공자가 따라오기 쉬운 비유와 관찰로 균형을 맞춘다. 다만 분자 수준의 설명이 밀집한 장에서는 배경 지식이 적은 독자에게 속도감이 빠르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식물의 느린 시간에 맞춰 관찰하는 법을 제시하는 점은 도시 생활의 속도를 잠시 늦추려는 독자에게 실질적 가치를 제공한다.
교육자와 정원사, 자연 에세이 독자에게 특히 권할 만하다. 식물학 기초부터 최신 연구 이슈까지 폭넓게 다루어 교재 보조 자료로도 유용하며, 계절 관찰을 통해 생명의 리듬을 체감하게 하는 안내서 역할을 한다. 책을 덮고 나면, 잎의 기공이 열리고 닫히는 미세한 리듬이나 뿌리의 방향 전환 같은 ‘보이지 않던 움직임’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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