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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가 없다면, 순간이동, 『출구가 없다면, 순간이동』 (김희찬·문오금 엮음, 고유명사)

미로를 그려 출구를 만든 소년의 증언 — 길을 잃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예술과 가족의 기록

최준혁2026년 5월 4일 오후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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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가 없다면, 순간이동.jpg출판사 제공

『출구가 없다면, 순간이동』은 스스로의 미로를 그리고 그 안에 출구를 만들어온 한 소년의 목소리를 조용히 전하는 기록문학이다. 생후 30개월에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고, 이후 미로 그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해온 김희찬의 삶과 가족의 시간이 이 책의 중심이다. 단순한 극복 서사가 아니라, 한 사람의 감각과 가족의 관계, 그리고 우리 모두가 지닌 ‘길 잃음’에 대한 사유로 확장되는 글이다.

책은 희찬의 말과 어머니의 증언, 엮은이의 기록을 교차시키며 구성된다. 희찬이 미로를 그리기 시작한 배경, 미로에 숨겨둔 ‘순간이동 장치’에 대한 설명, 그리고 미로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교감이 차분한 문장으로 펼쳐진다. 특히 출판사가 오랜 시간 인터뷰와 확인 과정을 거쳐 형식을 다듬은 만큼, 독자는 피상적 동정이나 과장된 영웅담 대신 진솔한 일상과 감각을 마주하게 된다. 희찬이 건넨 한마디—“출구를 못 찾으면 순간이동하면 되요”—는 이 책의 정서적 중심을 이루며, 막막함 앞에서 다른 방식으로 길을 상상하는 태도를 제안한다.

이 책의 미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예술이 개인의 표현을 넘어 타인과의 소통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점이다. 희찬의 미로는 단지 복잡한 선의 집합이 아니라, 길을 잃은 이들을 위한 장치와 표지판을 품은 언어다. 전시와 수상 경력을 통해 외부와 연결된 그의 작업은 ‘다름’이 곧 소통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다른 하나는 기록의 윤리다. 출판진이 연민의 소비를 경계하고, 희찬과 가족의 의사를 존중하며 글을 엮어낸 과정은 이 책을 단순한 감동담이 아닌 책임 있는 증언으로 만든다.

비평적으로도 읽을 지점이 있다. 저자는 자폐를 ‘극복’의 프레임으로만 읽지 않으려 애썼지만, 독자에 따라서는 ‘완치’나 수상 경력에 초점을 맞춘 해석이 생길 여지도 있다. 또한 희찬의 현재와 미래, 사회적 통합의 문제를 더 넓은 제도적 맥락에서 논의하는 확장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과연 누가 더 미로에 갇혀 있는가—특정 개인인가, 아니면 길을 찾지 못하는 우리 사회인가. 그 질문은 독자를 자기 삶의 미로로 다시 불러들인다.

결국 『출구가 없다면, 순간이동』은 한 소년의 미로와 그가 남긴 말들을 통해, 길을 잃었을 때 다른 방식으로 이동하는 상상력을 선물한다. 누구나 때로는 출구를 찾지 못해 멈춰 서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각자의 순간이동을 꿈꿀 수 있다. 이 책은 그 가능성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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