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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양자의 언어로 설계되어 있었는가, 『퀀텀, 생명의 탄생』 신간 (성지용·정재호·한울)
슈뢰딩거의 질문에서 출발한 양자생물학의 최전선
출판사 제공
『퀀텀, 생명의 탄생』은 생명을 ‘분자와 화학 반응의 집합’으로 이해해 온 고전적 관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양자역학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언어로 생명의 작동 원리를 다시 묻는 책이다. 이 책은 물리학과 생명과학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최근 급부상한 ‘양자생물학(quantum biology)’이라는 학문 흐름을 대중의 언어로 정리한다.
책의 출발점은 에르빈 슈뢰딩거의 질문이다. 1944년 출간된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슈뢰딩거는 생명체가 엔트로피에 맞서 질서를 유지하는 존재라는 통찰을 제시했다. 『퀀텀, 생명의 탄생』은 이 문제의식을 은유가 아닌 실제 물리적 메커니즘의 차원으로 확장하며, “생명은 어떻게 양자 현상을 활용하는가”라는 질문을 전면에 내세운다.
저자 성지용과 정재호는 각각 물리학과 의학·유전체학을 기반으로 연구해 온 과학자들이다. 이들은 생명 현상을 유전자 코드나 분자 상호작용으로만 환원하지 않고, 에너지·정보·질서가 비평형 상태에서 조직되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이 관점에서 생명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양자 확률과 물리 법칙 위에서 전략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제시된다.
책은 총 네 부로 구성된다. 제1부에서는 양자역학이 등장하기 전의 고전 과학과 생명 이해의 한계를 짚고, 왜 지금 양자생물학이 등장했는지를 설명한다. 입자이자 파동인 물질의 이중성, 관측과 불확정성 같은 개념은 일상의 기술 혁신을 넘어 생명 이해의 전환점으로 제시된다.
제2부와 제3부는 생명 내부에서 실제로 관찰되는 양자 현상들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광합성 과정에서 전자가 여러 경로를 동시에 탐색하는 양자 중첩, DNA 염기쌍에서 일어나는 전자 터널링과 돌연변이, 철새가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는 양자 나침반, 분자의 ‘진동’을 감지한다는 후각 이론까지 다양한 사례가 소개된다. 이 현상들은 고전 물리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생명의 효율성과 정교함을 새롭게 조명한다.
특히 광합성과 미토콘드리아에 대한 설명은 이 책의 핵심이다. 태양에서 출발한 한 줄기 빛이 엽록소에 흡수돼 전자를 들뜨게 하고, 그 에너지가 ATP로 전환돼 생명을 유지하는 연쇄 과정은 물리학·화학·생물학을 하나의 서사로 엮는다. 생명의 에너지는 단순한 화학 반응의 결과가 아니라, 양자적 탐색과 결맞음이 만들어낸 질서라는 시각이 제시된다.
책은 논쟁적인 주제도 회피하지 않는다. 뇌와 의식에서 양자 현상이 작동할 가능성을 탐구하는 ‘양자 의식 가설’은 아직 가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만, 저자들은 이 문제를 신비주의가 아닌 과학적 논쟁의 대상으로 다룬다. 양자생물학이 어디까지 설명력을 갖는지, 어디부터는 신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균형 잡힌 태도를 유지한다.
제4부에서는 양자생물학의 미래가 다뤄진다. 양자컴퓨터를 활용한 생명 시뮬레이션, 양자 기반 신약 개발, 에너지 시스템 모방, 그리고 외계 생명 탐사까지 논의는 확장된다. 이 지점에서 생명 이해는 학문적 호기심을 넘어 의학, 공학, 기술 문명 전반의 문제로 연결된다.
『퀀텀, 생명의 탄생』은 과장된 선언이나 단순한 낙관을 경계한다. 저자들은 양자생물학이 아직 많은 가설과 논쟁을 안고 있는 분야임을 분명히 하며, ‘모든 것이 양자로 설명된다’는 식의 단순화를 피한다. 대신 현재까지 밝혀진 실험 결과와 이론적 가능성을 바탕으로, 생명을 바라보는 좌표계를 조심스럽게 이동시킨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생명은 어디까지 물리학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설명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물리학·생명과학·정보과학·철학이 교차하는 이 질문 앞에서, 『퀀텀, 생명의 탄생』은 답보다 사유의 방향을 제시한다.
『퀀텀, 생명의 탄생』은 과학 교양서이면서도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고하는 책이다. 생명을 하나의 완결된 정의로 묶지 않고, 여전히 진행 중인 질문으로 남겨둔다는 점에서 이 책은 슈뢰딩거와의 진지한 ‘대화’에 가깝다. 생명을 다시 묻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가장 근원적인 질문의 출발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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