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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전 헌법재판관, 헌법 사유 담은 신간 『헌법을 생각하는 일』 출간

28년 판사·재판관 경험 기록… 헌법재판 결정의 이면과 판단 기준 조명

장세환2026년 4월 29일 오후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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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을 생각하는 일.jpg출판사 제공

김기영 전 헌법재판관의 신간 『헌법을 생각하는 일』은 헌법을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헌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기록한 책에 가깝다. 이 책이 다루는 핵심은 조문도, 판례 요약도 아니다. 대신 헌법재판관들이 어떤 질문 앞에서 멈추고, 갈라지고, 다시 합의하는지에 대한 장면들이다.

저자는 28년간 판사와 헌법재판관으로 일하며 수많은 헌법적 쟁점을 통과해왔다. 그러나 이 책은 자신의 판결을 정당화하거나 업적을 정리하는 회고록의 형식을 택하지 않는다. 재판관의 자리에 있었던 한 개인이, 판단이 요구되는 순간마다 어떤 제한과 불완전함 속에 놓였는지를 반복해서 드러내는 쪽에 가깝다. 헌법재판소라는 제도를 ‘결정의 공간’이 아니라 ‘고민의 공간’으로 그려내려는 태도가 일관되게 유지된다.

『헌법을 생각하는 일』에서 반복되는 질문은 단순하다. “이 사안을 헌법이 다루어야 하는가”, 그리고 “이 판단이 사회에 남길 흔적은 무엇인가”. 탄핵심판, 표현의 자유, 기본권 제한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은 결과보다 그 질문이 출현한 맥락 속에서 다뤄진다. 판결문에는 남지 않는 논의의 우회로, 소수의견이 밀려나는 과정, 끝내 합의하지 못한 채 남겨진 불일치들이 책 전반에 배치된다.

이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헌법재판소를 균형 잡힌 합의체로만 묘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재판관들은 늘 합리적이지도, 항상 일관되지도 않는다. 저자는 후견적 설명을 피한 채, 재판관 개인의 경험과 시각이 어떻게 판단에 스며드는지를 차분히 보여준다. 헌법은 추상적 규범이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주체는 구체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다만 『헌법을 생각하는 일』은 끝까지 한 발 물러서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의 판단이 지녔던 정치적 파장이나 사회적 갈등을 정면으로 평가하기보다, ‘판단의 절차’에 머무르기를 선택한다. 이는 헌법재판의 제도적 품위를 지키는 선택이자, 동시에 독자에게는 일정한 거리감을 남긴다. 이 책이 질문을 던지는 방식은 조심스럽고, 감정의 온도는 낮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의미를 갖는 지점은 분명하다. 헌법을 둘러싼 논쟁이 점점 즉각적인 진영 논리로 소비되는 시점에서, 『헌법을 생각하는 일』은 판단이 만들어지는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춘다. 결론보다 과정을 길게 남기는 이 책의 태도는, 헌법을 읽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헌법이 답이 아니라 질문의 형식으로 우리 앞에 놓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헌법을 생각하는 일』은 독자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독자에게 “당신이라면 이 질문 앞에서 어떤 판단을 내렸을 것인가”라는 조용한 요청을 남긴다. 그 요청이 끝내 불편하게 남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헌법을 둘러싼 사유가 대개 불편함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책의 가장 정직한 지점 역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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