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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앞에서 숭고는 어떻게 변형되는가, 『숭고의 주름』(우찬제, 문학과지성사)
기후 위기와 역사적 트라우마 속에서 비평의 윤리를 다시 묻는 사유의 기록
출판사 제공
『숭고의 주름』은 고통을 미학의 대상으로 전유해온 기존의 숭고 개념을 동시대의 재난 속에서 다시 호출하는 비평서다. 우찬제의 일곱 번째 비평집인 이 책은 기후 위기와 역사적 폭력, 집단적 트라우마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비평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저자는 ‘숭고’를 고양이나 초월의 범주로 환원하지 않고, 인간이 초래한 파국 앞에서 발생하는 무력감과 책임의 감정 속에서 재정의한다.
책의 사유는 페루 나스카 지상화에서 출발한다. 대지에 새겨진 거대한 형상들은 하나의 이미지라기보다, 서로 다른 차원이 맞닿으며 생성된 ‘주름’에 가깝다. 우찬제는 이 주름을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감각과 의미가 접속하는 사건의 표면으로 읽어낸다. 이러한 관점은 이후 문학, 미술, 음악, 생태 담론으로 확장되며 ‘횡단 미학’이라는 저자 특유의 비평적 방법론으로 자리 잡는다.
『숭고의 주름』에서 핵심 개념은 ‘재난적 숭고’다. 이는 칸트적 숭고처럼 인간 이성을 고양시키는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재난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죄책감, 그리고 윤리적 요청이 뒤엉킨 상태를 가리킨다. 기후 위기, 산불, 생태 붕괴의 장면들에서 숭고는 더 이상 초월의 통로가 되지 않는다. 대신 비평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사유의 자세로 재배치된다.
저자는 비평을 텍스트 해설의 기술로 제한하지 않는다. 『숭고의 주름』에서 비평은 세계의 고통을 받아 적는 행위에 가깝다. 레비나스, 아도르노, 마르쿠제, 리쾨르 등의 사유를 경유하며, 고통이야말로 사유의 출발점이라는 인식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예술은 고통을 미화하지 않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감각의 훈련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책은 모두 네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횡단의 상상력」은 고대 지상화에서 동시대 예술과 문학으로 이어지는 감각의 이행을 다룬다. 노근리 학살과 광주의 5월, 디아스포라 서사까지 이어지는 이 장에서 저자는 역사적 폭력을 하나의 과거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심연으로 위치시킨다.
2부 「숭고의 주름」은 인류세의 재난 풍경 속에서 숭고 개념이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11시 59분’이라는 은유는 파국 직전의 시간감각을 상징하며, 이 지점에서 비평은 희망의 수사를 경계한다. 대신 저자는 물의 눈으로 바람의 노래를 듣는 생태적 감수성과 같은 새로운 감각 형식을 모색한다.
3부 「횡단하는 소리풍경」에서는 한국 시를 중심으로 한 서정의 변주가 펼쳐진다. 정현종, 최하림, 이재무, 이승하, 곽효환, 한경옥 등의 작품을 통해, 시가 어떻게 세계의 고통을 소리로, 리듬으로 받아내는지를 분석한다. 여기서 시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횡단의 매개가 된다.
4부 「디아스포라 횡단」은 분단과 권력, 상상의 문제를 문학적 형상으로 읽어낸다. 최인훈, 홍성원, 김원일, 이승우, 함정임의 작품을 거쳐, 책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문학으로 향한다. 우찬제는 한강의 문학을 ‘고통의 법열’과 ‘깊은 주문’으로 규정하며, 역사적 상처를 끝까지 말하려는 글쓰기의 윤리를 강조한다.
『숭고의 주름』은 가볍게 읽히는 비평서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의 밀도는 난해함을 위한 난해함이 아니라, 고통을 축소하지 않기 위한 정직함에 가깝다. 저자에게 비평은 세계의 균열을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그 균열을 몸으로 견디는 태도다.
이 책은 질문으로 끝난다. 재난의 시대에 숭고는 가능한가, 그리고 비평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숭고의 주름』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비평이 여전히 세계의 고통 앞에 서 있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윤리를 끝까지 견지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동시대 한국 비평이 도달한 하나의 중요한 좌표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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