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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어떻게 사회를 기록하는가, 『잡찬』(강민구 옮김, 보고사)
당송명청의 일상과 권력을 풍자로 해부한 중국 고전 사회사
출판사 제공
『잡찬』은 웃음과 풍자를 통해 사회를 기록한 중국 고전 텍스트의 집대성이다. 당나라 이상은에서 시작해 송·명·청으로 이어지는 이 문헌군은, 단일 저자의 저작을 넘어 하나의 서술 양식이 천 년에 걸쳐 축적된 사례로 평가된다. 이번 번역서 『당송명청의 풍속과 풍자, 잡찬』은 그 방대한 계보를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국내에 처음으로 본격 소개한다.
‘잡찬(雜纂)’이라는 이름은 문자 그대로 ‘잡다한 것을 모았다’는 뜻을 가지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텍스트는 격언처럼 짧은 문장으로 일상의 불합리, 권력의 위선, 인간 욕망의 민낯을 포착한다. “눈치 없는 짓”, “체면을 돌보지 않는 일”, “누가 알까 두려운 것”과 같은 항목들은 특정 개인을 겨냥하기보다, 사회 전반에 반복되는 행태를 예리하게 드러낸다.
『잡찬』의 풍자는 노골적인 비판 대신 웃음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 웃음은 무해하지 않다. 독자는 미소를 짓는 동시에, 왜 이 장면이 익숙하게 느껴지는지를 자문하게 된다. 여기에서 풍자는 완충 장치이자 공격 수단으로 기능한다. 직접적인 저항이 위험했던 시대, 웃음은 가장 안전하면서도 가장 날카로운 사회 비평의 형식이었다.
이 텍스트가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은 시선의 폭이다. 『잡찬』은 황제나 고위 관료의 세계에 머물지 않는다. 승려, 무당, 창기, 광대, 노비, 백정 등 당대 사회의 주변부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그들의 행태와 처지가 풍자의 대상이 된다. 이는 공식 사서에서 삭제되기 쉬운 삶의 장면들을 간접적으로 복원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번 번역본은 이상은의 『잡찬』을 시작으로, 왕기의 『잡찬속』, 소식의 『잡찬이속』, 황윤교의 『잡찬삼속』, 위광불의 『잡찬신속』, 고록의 『광잡찬』, 석성금의 『찬득확』과 그 이집까지를 아우른다. 각 텍스트는 같은 항목을 반복하거나 변주하면서, 시대별 감각과 사회적 긴장을 반영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특정 재치가 아니라, 풍자가 작동하는 구조 자체를 읽게 된다.
『잡찬』의 항목들에는 묘한 지속성이 있다. “격에 맞지 않는 것”, “억지로 아는 척하는 짓”, “자기 분수를 모르는 짓”과 같은 표현은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다. 이 고전 텍스트가 단순한 과거 기록을 넘어, 인간 행동의 반복성을 증명하는 이유다. 시대가 달라도 인간의 욕망과 위선은 다른 모습으로 재현될 뿐이다.
강민구의 번역은 이 텍스트의 압축성과 리듬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둔다. 다수의 이본을 정밀하게 대조해 원문의 이질성과 변이를 그대로 드러내며, 지나친 설명으로 의미를 단일화하지 않는다. 각 문항은 독자가 스스로 해석하고 연결할 수 있는 여백을 유지한다. 이는 『잡찬』을 고전 ‘강독’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읽기의 텍스트로 만든다.
이 책은 문학사적 가치와 동시에 사회사적 자료이기도 하다. 항목 하나하나는 당시의 행동 규범, 계층 인식, 도덕 감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풍속 연구의 중요한 단서로 기능한다. 『잡찬』은 웃음을 빌려 말하지만, 그 웃음의 방향은 언제나 사회 구조를 향한다.
『당송명청의 풍속과 풍자, 잡찬』은 고전 읽기의 또 다른 방식을 제시한다. 줄거리를 따라가지 않고, 개념을 암기하지도 않는다. 대신 독자는 하나의 항목 앞에 멈춰 서서, 그 문장이 어떤 사회를 전제하고 있는지를 상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웃음은 점차 질문으로 바뀐다.
이 책이 끝에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왜 웃었는가.” 그리고 그 웃음이 무엇을 가리고 있었는가. 『잡찬』은 천 년 전 기록이지만, 오늘날 독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방식으로 사회를 비춘다. 고전이 과거에 머물지 않는 이유를, 이 책은 웃음이라는 가장 오래된 언어로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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