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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처음 만나면 나이를 묻는가, 『나이 묻는 사회』(정회옥, 한겨레출판)

이 책은 한국 사회의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를 구조적으로 분석한다

한성욱2026년 4월 28일 오후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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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묻는 사회.jpg출판사 제공

『나이 묻는 사회』는 한국 사회에 깊게 내재한 연령차별주의(ageism)를 정면으로 다루는 사회비평서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나이를 묻고, 그 나이에 따라 말투와 관계의 위계를 정하는 일상적 관행이 어떻게 차별과 배제로 이어지는지를 분석한다. 저자 정회옥은 연령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태도를 재단하는 기준으로 작동하는 현실에 주목한다.

이 책의 출발점은 ‘나이는 모두가 겪는 조건이기 때문에 차별이 아니다’라는 통념에 대한 문제 제기다. 저자는 연령차별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달리 사회적으로 덜 가시화되는 이유를 짚으며, 그 결과 당사자조차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구조를 설명한다. 나이는 결국 모든 세대를 동시에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만든다는 분석이다.

1장은 한국 사회 전반에 퍼진 나이 멸칭 문화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틀딱충, 할매미, 연금충’으로 불리는 노년, ‘개저씨, 영포티, 김여사’로 호명되는 중장년, ‘MZ, 삼포 세대’로 유형화되는 청년, ‘급식충, 잼민이, ~린이’로 조롱받는 아동과 청소년까지, 전 생애주기에 걸쳐 멸칭이 존재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러한 언어는 단순한 유행어나 농담이 아니라, 특정 연령대를 열등한 존재로 고정하는 기능을 한다.

2장과 3장은 연령차별주의가 형성된 역사적·사회문화적 배경을 짚는다. 저자는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며 형성된 경로사상, 장유유서 문화, 그리고 생산성과 인간 가치를 동일시해 온 사고방식이 나이 중심 사회를 강화했다고 분석한다. 정치 영역에서도 나이는 중요한 변수로 작동한다. 노인 정치 담론, 연령 제한이 있는 출마 자격, 연장자 우선 규칙 등은 연령에 따른 권력 불균형을 제도적으로 고착화한다.

4장은 일상에서 쉽게 마주치는 연령차별 사례들을 통해 독자의 인식을 환기한다. 교통약자석을 둘러싼 갈등, ‘대견하다’ ‘기특하다’ 같은 표현에 담긴 비대칭적 시선, 노키즈존과 노시니어존 논쟁은 나이가 어떻게 권리와 배려의 기준으로 남용되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러한 사례들이 개별 행위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규범과 제도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후반부에서 저자는 ‘나이 묻지 않는 사회’를 하나의 지향점으로 제시한다. 연령을 완전히 무시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연령이 유일한 판단 기준으로 기능하지 않도록 사회적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대 간 교류를 촉진하는 주거 모델, 돌봄과 교육 영역의 세대 통합 실험, 연령차별을 실질적으로 다룰 수 있는 법·제도 개선 방안이 함께 논의된다.

『나이 묻는 사회』는 특정 세대를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나이가 어떻게 인간의 가치를 규정하는 잣대로 작동해 왔는지를 차분히 해부하며, 그로 인해 발생한 혐오와 단절의 구조를 드러낸다. 연령을 중심으로 조직된 한국 사회의 관성을 이해하기 위한 분석서로, ‘나이 전쟁’이라는 말이 일상이 된 지금의 현실을 구조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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