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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이 아닌 삶의 흐름을 따라 걷다, 『만주와 한반도를 잇다』 출간 (강주원 | 정한책방)
두만강과 압록강을 ‘단절의 선’이 아닌 ‘공존의 공간’으로 다시 읽다
출판사 제공
두만강과 압록강은 오랫동안 분단과 단절의 상징으로 굳어져 왔다. 지도 위에 그어진 국경선은 이 두 강을 접근 불가능한 경계로 만들었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이곳은 늘 멀고 차가운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신간 『만주와 한반도를 잇다』는 이러한 인식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책이다.
이 책은 20년 넘게 만주와 한반도의 접경 지역을 오가며 연구해 온 인류학자 강주원의 현장 기록을 집약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두만강과 압록강을 ‘나뉨의 선’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넘나들며 삶을 이어온 ‘움직임의 공간’으로 복원한다. 강은 국경이기 이전에 길이었고, 분단 이전과 이후를 관통해 여전히 사람과 물류가 흐르는 생활의 장이었다는 점을 구체적인 사례로 보여준다.
『만주와 한반도를 잇다』는 방대한 역사적 정보와 지리적 배경을 단순한 정보 나열이 아니라 서사적 흐름으로 엮어낸다. 안중근, 이회영, 윤동주, 백석, 김대건 등 익숙한 인물들이 언제, 어떤 선택의 순간에 두 강을 건넜는지를 따라가며, 그 결단의 무게를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 속에서 재현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교과서 속 인물이 아닌, 강변에 서 있던 한 인간의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온 역사적 고정관념들이다. ‘만주는 늘 춥다’는 이미지, 백두산 천지를 둘러싼 국경 인식, 두만강·압록강이 언제부터 국경으로 기능했는지에 대한 통념을 낯설게 해체한다. 예컨대 안중근이 두만강을 건넜던 시기가 혹한의 겨울이 아니라 한여름 장마철이었다는 사실은, 만주와 독립운동을 둘러싼 상징적 이미지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저자의 시선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코로나19로 국경이 봉쇄된 이후에도 단둥과 신의주를 오가던 물류, 강변에서 이어지는 농사와 어업, 그리고 북한 사람·북한 화교·조선족·한국 사람의 복합적인 삶의 풍경을 통해 접경지대의 현재를 생생하게 기록한다. 강을 사이에 둔 삶은 단절보다 공존의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압록강과 두만강을 동시에 넘나드는 인물들의 궤적을 추적하는 대목은 이 책의 핵심이다. 한국전쟁 이전 만주에서 38선을 넘어 남하한 흐름만이 아니라, 반대로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이동한 사람들, 다시 두 강을 건너 만주로 향한 사람들의 존재를 함께 다루며, 한반도 근현대사가 결코 일방통행의 이야기만은 아님을 강조한다.
『만주와 한반도를 잇다』는 학술서의 밀도를 유지하면서도 독자를 배려한 문체를 선택한다. 현장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구체적인 풍경을 통해 독자는 마치 저자와 함께 강변을 걷는 듯한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국경과 분단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생활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저자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국경을 바라보는 관성적인 시선에 균열을 낸다. 휴전선 중심의 한반도 인식에서 벗어나, 만주를 통해 대륙과 이어져 온 한반도의 또 다른 좌표를 제시한다. ‘선’으로 나뉘어 왔던 공간을 ‘면’으로 확장하는 시도다.
출판사 정한책방은 “이 책은 국경을 둘러싼 역사와 일상을 동시에 복원한 살아 있는 지도”라며 “분단을 다르게 상상할 수 있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만주와 한반도를 잇다』는 과거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국경을 어떻게 기억해 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건너고 마주할 것인가. 이 책을 덮는 순간, 두만강과 압록강은 더 이상 막힌 선이 아니라, 여전히 흐르고 있는 삶의 경로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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