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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라는 역할에서 내려오는 법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사람도 삶도』 신간 (이은정 | 작가의집)

관계에 지친 한 사람이 자신을 앞순위로 돌려놓기까지의 기록

장세환2026년 4월 27일 오후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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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애쓰셨습니다 사람도 삶도.jpg출판사 제공

이은정의 신간 에세이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사람도 삶도』는 위로의 말로 시작하지만, 그 위로가 향하는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타인의 마음을 치유하고 소통을 가르쳐온 저자는 오십 번째 생일을 기점으로, 더 이상 ‘좋은 사람’으로 버티며 살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이 책은 그 결단 이후의 시간을 기록한 고백에 가깝다.

책의 출발 장면은 상징적이다.

“오십 번째 생일날,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리기로 했다.
쏟아지는 축하 전화를 뒤로한 채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꾸고
이불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축하받아야 할 날, 저자는 세상과의 연결을 끊는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지만, 이불 속에서 울고 있던 그는 “사람에 체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가련한 영혼”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장면에서 ‘사람’은 위로의 대상이 아니라, 번아웃의 원인으로 등장한다.

이 책이 반복해서 묻는 질문은 단순하다. 나는 언제부터 나를 뒤로 미뤄왔는가.
저자는 그 답을 관계 속에서 찾는다. 늘 경청하고, 맞추고, 배려해온 삶은 어느새 자신의 감각을 마비시켰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마주한 얼굴은 더 이상 익숙하지 않다.

“거울 속에는 눈가에 잔주름이 깊게 패고
입꼬리가 축 처진, 피곤해 보이는 중년 여자가 서 있었다.”

이 장면에서 피로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 지속된 자기 소외의 결과처럼 읽힌다. 저자는 이 낯섦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이 책의 태도는 일관되게 솔직하다. 회복은 긍정의 주문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에세이 중반부에서 등장하는 ‘초긍정’에 대한 재정의는 인상적이다.

“초긍정이란 거창한 에너지가 아니라,
말할 때 ‘그래도’라는 접속사를 붙이는 습관이었다.”

“힘들다. 그래도 어제보다 한 페이지 더 썼다.”
이 문장은 고통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고통 속에서도 시선을 이동시키는 연습을 제안한다. 이 책의 위로가 가볍지 않은 이유는, 언제나 ‘힘들다’라는 문장을 지운 뒤에 긍정을 덧붙이지 않기 때문이다.

책에서 가장 실천적인 개념은 ‘70% 규칙’이다.

“100%라는 기대는
99%의 성과조차 실패로 간주하게 만드는 감옥이었다.”

모든 일과 관계에 70%만 기대하기로 했을 때, 남은 30%는 여백이 된다. 그리고 그 여백에 감사가 들어온다. 이 규칙은 자기계발서의 성취 논리와 거리를 둔다. 더 잘해내기보다, 덜 무너지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관계에 관한 서술에서 저자의 문장은 더욱 단단해진다.

“거절은 상대를 실망케 하는 비정함이 아니라,
내 삶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이었다.”

이 문장에서 거절은 공격이 아니라 경계다. 울타리가 있어야 정원이 아름답듯, 경계가 있을 때 관계도 숨을 쉰다. 저자는 이 변화를 통해 오히려 존중받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이 책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관계 윤리에 관한 에세이로 확장된다.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사람도 삶도』는 삶을 전면적으로 바꾸라고 말하지 않는다. 연락처를 조금 줄이고, 모임에서 한 발 물러나며, 혼자 있는 시간을 배우는 작은 선택들을 기록할 뿐이다. 그러나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삶의 중심을 다시 자신에게로 이동시킨다.

이 책의 제목은 독자에게 보내는 문장이자, 저자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이 문장은 이제 더 애쓰지 말라는 명령이 아니라, 애써온 시간을 인정해 주는 선언처럼 읽힌다.

관계에 지친 사람, 늘 ‘괜찮은 사람’으로 남아왔던 사람에게 이 책은 조용히 말한다. 이제 사람도, 삶도, 조금은 내려놓아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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