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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놀이로 시작하는 세상의 감각 『꿀꿀꿀』 신간 (김혜인 | 한림출판사)
아기 돼지와 꿀벌, 소리와 의미가 겹쳐지는 첫 말의 세계
출판사 제공
아기에게 세상은 아직 개념이 아니라 감각이다. 김혜인의 신간 보드북 그림책 『꿀꿀꿀』은 그 감각의 출발점을 ‘소리’에 둔다. 의미를 알기 전에 듣고, 이해하기 전에 따라 하며 세계와 관계 맺는 어린 시절의 언어 경험을, 이 책은 단순하고 명료한 이야기로 포착한다.
『꿀꿀꿀』은 졸고 있는 해님과 함께 시작된다. 꾸벅꾸벅 졸고 있던 아기 돼지의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 “부우우웅 꿀!” 꿀벌이 나르는 꿀의 소리는 돼지의 울음소리와 겹치며 이야기의 중심 축이 된다. 꿀벌이 떨어뜨린 꿀 한 방울을 맛본 아기 돼지는 눈을 번쩍 뜨고, 그 뒤를 따라나선다. 이야기는 “꿀”이라는 하나의 소리가 의미를 바꾸며 이어지는 구조 위에서 전개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말놀이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이다. 같은 소리이지만 전혀 다른 뜻을 가진 말—달콤한 ‘꿀’과 돼지의 울음 ‘꿀’—은 언어가 지닌 우연성과 확장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는 의미를 배우기 이전의 독자, 즉 0~3세 유아에게 언어를 ‘설명’이 아닌 ‘경험’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꿀꿀꿀』은 이야기뿐 아니라 시각적 구성에서도 아기 독자의 감각에 집중한다. 노랑과 검정의 꿀벌, 분홍빛 아기 돼지, 초록 들판과 파란 하늘은 강한 대비와 명확한 색채로 화면을 채운다. 김혜인은 3D 프로그램을 활용해 공간과 사물을 선명하게 구현함으로써, 형태와 색깔을 구분하고 인지해가는 초기 발달 단계의 독자에게 명확한 시각적 자극을 제안한다.
읽는 경험 또한 중요하게 설계됐다. 모음 ‘ㅗ’와 ‘ㅜ’로 이루어진 의성어와 의태어는 입 모양이 단순하고 소리의 울림이 분명해, 보호자가 소리 내어 읽어주기에도, 아기가 따라 말해 보기도 쉽다. 책을 읽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말하기 연습이 되고, 소리는 곧 놀이가 된다.
이 책은 김혜인 작가의 첫 보드북 작업이다. 이전 작품인 『말랑말랑 박치기 공룡』과 『검은 양』에서 서사와 상징을 통해 성장과 정체성을 다뤘다면, 『꿀꿀꿀』에서는 이야기를 최대한 응축해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각’으로 초점을 옮긴다. 복잡한 배경이나 갈등 대신, 반복과 리듬, 색과 소리로 이루어진 세계가 펼쳐진다.
『꿀꿀꿀』은 교훈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아기가 처음 만나는 세계가 얼마나 재미있고 다채로운지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결말이 아니라 과정이다. 꿀을 더 먹을 수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소리를 따라가며 움직이고, 보고, 놀라는 경험 자체가 이미 충분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단단한 보드북 형식은 손으로 쥐고 넘기는 경험까지 고려한다. 『꿀꿀꿀』은 읽히기보다는 함께 소리 내어 살아지는 책에 가깝다. 아기가 웃고 소리를 내며 반응할수록, 이 책은 그 역할을 다한다.
『꿀꿀꿀』은 아기에게 주는 첫 번째 언어 놀이이자, 소리와 의미가 겹쳐지며 세상이 확장되는 순간을 담은 그림책이다. 말이 본격적인 도구가 되기 전, 언어가 놀이이던 시절을 가장 정확한 방식으로 기록한 한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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