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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뒤에 찾아오는 가장 큰 용기 『컵을 깨뜨린 날』 신간 (엑스 팡 지음, 김세실 옮김 | 후즈갓마이테일)

죄책감을 처음 만난 아이의 마음을 유머와 사랑으로 어루만지는 감정 그림책

장세환2026년 4월 24일 오후 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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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을 깨뜨린 날.jpg출판사 제공

아이의 세계에서 ‘실수’는 종종 세상이 무너지는 일처럼 느껴진다. 컵 하나가 깨졌을 뿐인데, 혼이 날까 봐, 미움을 받을까 봐, 사랑이 사라질까 봐 마음이 먼저 깨진다. 『컵을 깨뜨린 날』은 바로 그 순간을 정확히 포착한 그림책이다. 할머니의 소중한 컵을 깨뜨린 아이 메이가 느끼는 조마조마한 불안과 죄책감을, 유머와 따뜻함으로 풀어낸 이 책은 아이와 어른 모두의 마음을 동시에 다독인다.

이야기는 단순한 사건에서 출발한다. 메이는 실수로 컵을 깨뜨리고, 놀란 마음에 도망친다. 옷장 속에 숨고, 말을 삼키고,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고양이 미미가 대신 범인으로 몰린 것이다. 할머니는 미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다정하게 케이크를 내온다. 바로 그 순간, 메이의 마음은 더 무거워진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아이의 내면을 ‘도덕 교육’으로 단순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거짓말하면 안 되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거짓말과 침묵 사이에서 어떤 감정을 겪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걸 알고 있는 듯 메이를 바라보는 고양이 미미의 시선은,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집요하고 커질 수 있는지를 탁월하게 형상화한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미미의 얼굴은 점점 커진다. 이는 아이의 마음속에서 죄책감이 자라는 과정을 그대로 따라간 시각적 장치다. 웃음이 나는 설정이지만, 그 웃음 사이로 긴장과 불안이 스며든다. 좋아하는 케이크를 앞에 두고도 먹지 못하는 메이의 모습은, 아이가 느끼는 심리적 압박을 그 어떤 설명보다 생생하게 전달한다.

『컵을 깨뜨린 날』은 ‘고백’을 두려움의 끝에 놓인 벌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고백은 마음을 다시 가볍게 하는 출발점이다. 메이가 용기를 내어 사실을 말하자, 할머니는 화를 내지 않는다. 대신 메이를 꼭 안아 주고, 함께 깨진 컵 조각을 다시 붙인다. 이 장면에서 이 책은 중요한 메시지를 건넨다. 실수는 관계를 끝내는 사건이 아니라, 함께 회복해 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꿰맨 자리마다, 고친 자리마다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이야기는, 결점을 숨기거나 지워야 할 흠으로 보지 않도록 이끈다. 깨진 흔적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의미가 덧붙는다. 이는 아이에게는 물론, 양육자에게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장면이다.

이 책이 2025년 뉴욕타임스 ‘최고의 그림책’에 선정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엑스 팡은 아이의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실수 이후 찾아오는 불안, 숨기고 싶은 마음, 그리고 결국 정직해지고 싶은 욕망을 리듬감 있는 화면과 절묘한 타이밍으로 그려낸다. 영화처럼 이어지는 장면 구성은 읽는 내내 긴장과 웃음을 동시에 만든다.

번역을 맡은 김세실은 그림책 작가이자 오랜 번역가로서, 원문의 섬세한 감정 결을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살려냈다. 과하지 않은 말투, 아이의 속마음을 정확히 짚는 어휘 선택은 이 책이 4~7세 독자에게도 무리 없이 다가가게 한다.

『컵을 깨뜨린 날』은 아이에게 “정직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정직해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혼남이 아니라 안김이, 단절이 아니라 회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경험을 이야기로 건네준다. 이는 실수를 두려워하기보다, 실수 이후를 배워 가는 데 초점을 둔 그림책이다.

이 책은 아이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아이가 실수했을 때 어른이 어떤 태도로 곁에 서야 하는지를 조용히 묻는다. 서둘러 훈계하기보다, 기다려주고 함께 고칠 수 있는 여유. 『컵을 깨뜨린 날』은 그 여유가 아이의 ‘마음의 근육’을 어떻게 키우는지를 보여준다.

컵은 깨졌지만, 이야기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이 짧고 단단한 그림책은 이렇게 말한다. 실수는 끝이 아니라, 관계가 다시 깊어질 수 있는 문턱이라고. 『컵을 깨뜨린 날』은 죄책감을 처음 만난 아이에게, 그리고 그 곁에 선 어른에게 오래 남을 다정한 기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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