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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알면서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대하여 『로맨스 유통기한』 신간 (레베카 설 지음, 금도희 그림 | 모모)
연애의 끝을 미리 아는 여자, 그럼에도 사랑을 선택하는 용기에 관한 로맨스
출판사 제공
사랑에는 언제나 불확실성이 따른다. 시작이 설레는 만큼, 끝이 두렵다. 만약 그 끝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우리는 더 현명하게 사랑할 수 있을까. 『로맨스 유통기한』은 바로 이 질문을 전면에 내세운 소설이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로맨스 소설가 중 한 명인 레베카 설의 대표작 『로맨스 유통기한』이 국내 독자들과 처음 만났다. 이 작품은 로맨스의 틀을 따르면서도, 사랑을 둘러싼 인간의 불안과 선택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
이야기의 주인공 다프네 벨에게는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연애를 시작할 때마다 정체불명의 쪽지가 나타나 이번 관계의 지속 기간을 정확히 알려준다는 것. 이 쪽지의 예언은 단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다. 마틴과는 3일, 노아와는 5주, 휴고와는 3개월. 다프네는 늘 예고된 이별을 향해 관계를 ‘관리’하며 살아왔다.
이별이 확정된 연애는 다프네에게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이별의 고통은 결국 예측 불가능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끝을 아는 사랑은 상처 주지도, 깊이 빠질 필요도 없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지키며 연애한다.
하지만 어느 날, 소개팅을 앞둔 다프네에게 도착한 쪽지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르다. 기한도 없이, 단 세 글자만 적혀 있다. “제이크.”
이 쪽지는 평생의 짝을 의미하는 구원일까, 아니면 더 큰 혼란의 시작일까. 제이크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다프네는 처음으로 불안을 느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랑 앞에서, 그녀는 이제껏 사용해온 모든 생존 전략을 쓸 수 없게 된다.
『로맨스 유통기한』이 흥미로운 지점은 이 판타지적 설정이 결코 현실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이 소설은 30대 여성의 삶을 매우 현실적으로 포착한다. 커리어와 우정, 가족과의 거리, 그리고 “함께 늙어갈 사람”에 대한 압박. 쪽지는 마법의 도구라기보다는, 우리가 마음속으로 늘 계산하고 있는 연애의 불안을 가시화한 장치에 가깝다.
작품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다프네의 연애사를 하나씩 조명한다. 쪽지 덕분에 그녀는 이별을 견뎌왔지만, 동시에 사랑의 깊이를 스스로 제한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끝이 정해져 있다는 전제는 관계를 단순하게 만들지만, 그만큼 밀도를 앗아간다.
이야기는 제이크뿐 아니라, 이미 끝났다고 믿었던 전 연인 휴고를 다시 호출한다. 휴고는 여전히 다프네를 향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다프네는 예언과 감정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 소설은 운명과 자유의지를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는다. 대신 질문한다. 예언을 안다는 사실이 정말로 선택의 자유를 없애는가, 아니면 우리의 선택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가.
레베카 설은 사랑을 언제나 관계의 ‘결말’이 아니라 ‘과정의 태도’로 바라본다. 이 소설에서 핵심은 누가 최종적으로 선택되는가가 아니라, 다프네가 처음으로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인정하는 순간”이다. 소설 중반부에 등장하는 “가벼움의 반대는 진지함이 아니라 깊이”라는 대사는, 이 작품의 정서를 가장 정확하게 요약한다.
『로맨스 유통기한』은 달콤한 로맨스에 머무르지 않는다. 친구들이 하나둘 엄마가 되어가고, 관계를 유지하려면 계속해서 서로를 선택해야 하는 현실, 그리고 여성들 사이의 우정이 얼마나 중요한 안전망인지를 작품은 곳곳에서 강조한다. “인생 자체가 진퇴양난이라서 신은 여자들의 우정을 창조했다”는 문장은, 이 소설이 사랑을 얼마나 입체적으로 바라보는지를 보여준다.
후반부로 갈수록 소설은 ‘진실’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진실은 늘 복잡하고 비논리적이며, 편리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끝을 아는 이야기 속에 숨어 안도하지만, 결국 진실은 따라온다. 다프네가 내리는 마지막 선택은,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선택이다. 예언이 아니라 감정에 근거한 선택, 안전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이다.
이 작품이 많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묻기 때문이다. 사랑의 끝을 모른 채 시작하는 일은 언제나 두렵다. 하지만 인생 자체가 이미 유한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오늘을 선택해 살아간다. 소설은 말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했는가’라고.
결말을 알고도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겠는가. 『로맨스 유통기한』은 이 질문에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다프네의 여정을 통해, 사랑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갈망하는지를 정직하게 비춘다.
이 소설은 로맨스이면서 동시에 삶의 이야기다. 사랑을 두려워한 적이 있는 사람, 끝이 보일수록 더 움츠러드는 사람, 그리고 한 번쯤은 “그래도 해보자”고 말해보고 싶었던 사람에게 이 책은 오래 남을 것이다.
『로맨스 유통기한』은 이렇게 속삭인다. 끝이 정해져 있어도, 선택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라고. 그리고 그 선택이야말로 사랑을 사랑답게 만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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