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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에서 건져 올린 삶의 감사 『일상의 삶과 감사의 노래』 신간 (피기춘, 창조문예사)

22년의 기다림 끝에 도착한, 일상과 신앙을 노래하는 성찰의 시집

한성욱2026년 4월 24일 오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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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삶과 감사의 노래.jpg출판사 제공

삶을 오래 살아온 이의 언어에는 서두름이 없다. 격정 대신 침묵이, 선언 대신 감사가 자리한다. 『일상의 삶과 감사의 노래』는 그런 시집이다. 피기춘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이후 무려 22년 만에 펴낸 네 번째 시집으로, 이 책에 실린 시편들은 일상의 순간들 속에서 길어 올린 신앙적 성찰과 삶의 감사를 조용한 목소리로 전한다.

이 시집은 화려한 언어로 독자를 압도하지 않는다. 대신 낮게 가라앉은 언어로 삶의 깊은 결을 어루만진다. 시인은 평생 신앙에 의지해온 자신의 삶을 숨김없이 꺼내 보이되, 고백을 과시로 만들지 않는다. 그의 시는 설명하지 않고, 응시한다. 그래서 이 시집은 읽는 이를 설득하기보다, 함께 머물게 하는 힘을 지닌다.

표제 그대로 『일상의 삶과 감사의 노래』에 담긴 시들은 특별한 사건보다 반복되는 일상에 주목한다. 낙엽 하나, 밤새 내린 눈, 말없는 시간, 떠나간 부모의 기억처럼 누구나 지나쳐온 장면들이 시의 중심에 놓인다. 그러나 이 평범한 풍경들은 신앙의 시선을 통과하며, 존재의 의미와 삶의 끝자락까지 확장된다.

「낙엽의 명상」에서 시인은 마지막 낙엽을 밟지 못하는 마음을 통해, 생의 끝을 황홀한 전율로 바라본다. 유서 한 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삶의 장엄함을 ‘풍경화 한 폭’에 비유하는 이 시는, 죽음을 공포가 아닌 존엄의 순간으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생의 마침표를 두려움이 아닌 경외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언어의 미학」에서는 말의 한계를 정직하게 인정한다. 밤새 내린 눈, 피고 지는 꽃, 흐르는 세월처럼 인생도 ‘소리 없이 흐른다’고 말하며, 하고픈 말이 많을수록 오히려 ‘긴 함묵이 최고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시는 담담히 전한다.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조 역시 바로 이 침묵의 미학에 가깝다.

「눈물 없는 울음」은 시인이 지나온 삶의 질곡을 정면으로 돌아본다. 가난과 정열, 실패와 꿈의 잔상들이 쌓인 시간 뒤에 남는 것은 ‘망각은 위대한 예술이다’라는 체념에 가까운 깨달음이다. 그러나 그 망각은 도피가 아니라 견딤의 결과로 읽힌다. 모든 것을 잊으라는 말이 아니라, 끝내 붙들지 않아도 되는 지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이 시집에서 신앙은 교리나 설교의 언어가 아니다. 별빛이 된 아버지와 달빛이 된 어머니를 바라보는 「눈빛」처럼, 신앙은 상실 이후에도 삶을 지탱하는 감각으로 존재한다. 시인은 더 이상 부모를 붙잡지 않는다. 대신 그 빛을 바라보는 ‘눈빛’이 되어 현재에 서 있다. 이는 떠난 이를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성숙한 응답이다.

『일상의 삶과 감사의 노래』가 주는 인상은 ‘고요함’이다. 격렬한 감정이나 날 선 문제의식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오래 숙성된 언어들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그 덕분에 이 시집은 빠르게 읽히지 않는다. 한 편 한 편 천천히 읽게 되고, 읽는 이의 삶 속 기억과 조용히 겹쳐진다.

피기춘 시인은 강릉 출생으로, 학자이자 교육자, 그리고 시인으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인물이다. 중앙경찰학교와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공적 영역에서도 오래 활동했지만, 그의 시에서는 직함이나 성취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든 시간을 통과하고 남은 인간의 자리,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중심에 놓인다.

이 시집은 신앙시이면서 동시에 생활시다. 특정 신앙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삶을 오래 살아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정서들이 곳곳에 배어 있다. 감사란 거창한 고백이 아니라, 결국 ‘오늘을 무사히 건너온 마음’이라는 사실을 이 시집은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일상의 삶과 감사의 노래』는 밝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슬픔을 지나온 뒤에야 가능한 감사의 어조를 고집한다. 그래서 독자는 이 시집에서 위로를 받기보다,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무엇을 잃었는지, 무엇을 아직 품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어떤 말을 덜어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창조문예 시선 23번으로 출간된 이 시집은, 시가 여전히 인간의 내면을 어루만질 수 있는 언어임을 조용히 증명한다. 유행하지 않고, 소란스럽지 않으며, 대신 오래 남는 시들이다.

『일상의 삶과 감사의 노래』는 삶이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노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낮은 음역의 언어로, 이 시집은 오늘을 견뎌온 독자에게 건넨다. “여기까지 와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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