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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마음으로 다시 바라본 가장 슬픈 임금의 시간 『왕을 사모한 소년』 신간 (정영애, 나녹)

단종의 비극을 또래 소년의 시선으로 풀어낸 청소년 역사소설

장세환2026년 4월 24일 오후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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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사모한 소년.jpg출판사 제공

조선의 역사에서 단종은 언제나 ‘가장 슬픈 임금’으로 기억된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가 밀려나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은, 사건 중심의 역사 서술 속에서 비극의 상징처럼 반복되어 왔다. 『왕을 사모한 소년』은 이 익숙한 비극을 전혀 다른 거리에서 다시 바라본다. 왕이 아니라, 왕을 바라보던 또래 소년의 마음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단종과 같은 날 태어났다는 인연으로 어린 왕을 특별하게 여기게 된 소년 한수다. 한수는 단종 즉위 소식을 들으며 기뻐하고, 왕이 쫓겨났다는 소식 앞에서 혼란과 슬픔을 겪는다. 그는 정치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정당한 자리에 있던 사람이 왜 밀려나야 하는지’를 묻고, 그 물음에 쉽게 답하지 못한다. 이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왕을 사모한 소년』은 단종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하는 대신, 한 소년의 감정 변화에 따라 서사를 이끈다. 덕분에 독자는 사건을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감정을 통해 ‘체험’하게 된다. 단종의 몰락은 정치적 음모보다 먼저, 한 아이의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으로 다가온다.

이 책의 인상적인 구성 중 하나는 이야기의 시작이다. 작품은 단종의 삶과 관련된 실제 장소들을 사진으로 먼저 제시한다. 근정전, 창덕궁, 영월 청령포, 장릉까지 이어지는 공간들은 이야기의 배경을 넘어 기억의 좌표로 기능한다. 독자는 글을 읽기 전, 단종이 지나간 자리를 눈으로 확인하며 서사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는 단종의 삶을 추상적인 역사에서 구체적인 현실로 끌어당기는 장치다.

작품 곳곳에는 조선 시대의 생활과 풍속이 세밀하게 녹아 있다. 오방색으로 만든 장신구, 아이들이 입던 옷과 왕실의 복식, 염색 방식과 색이 지닌 의미까지 장면 속에 자연스럽게 배치된다. 이러한 설명은 지식 전달을 위해 따로 멈춰 서지 않는다. 인물의 행동과 시선 속에 스며들어, 당시의 삶을 생생하게 체감하게 한다.

정영애 작가는 단종의 삶을 ‘불쌍함’으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단종의 비극을 바라보는 한수의 시선을 통해, 정당함과 공정함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어떻게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왕이었기 때문에 슬픈 것이 아니라, 옳아 보였던 질서가 아무 설명 없이 뒤집히는 순간의 폭력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사육신의 죽음, 단종의 복위 실패, 유배지에서의 쓸쓸한 삶은 역사적 사실로 이미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사실들이 단정적인 평가로 정리되지 않는다. 대신 한수가 느끼는 혼란과 슬픔, 이해할 수 없음의 감정이 먼저 놓인다. 독자는 ‘누가 옳았는가’보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왕을 사모한 소년』은 청소년 독자를 위한 역사소설이지만, 사건을 단순화하지 않는다. 정치적 권력 투쟁의 결과가 개인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특히 가장 약한 존재에게 어떤 상처로 돌아오는지를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이는 오늘을 사는 독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현재를 비추는 힘을 지닌다. 한수의 시선은 독자로 하여금 ‘무엇이 옳은가’, ‘정당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다시 묻게 만든다. 정답을 제시하지 않기에, 질문은 더 오래 남는다.

정영애는 오랜 시간 아동·청소년 문학을 써온 작가로, 역사적 소재를 감정의 언어로 풀어내는 데 강점을 보여왔다. 『왕을 사모한 소년』에서도 그는 설명보다 체감을 택한다. 단종의 슬픔은 직접 말해지기보다, 그를 바라보던 소년의 침묵과 망설임 속에서 드러난다.

『왕을 사모한 소년』은 단종을 다시 기억하게 만드는 책이 아니다.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단종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마음의 결로 다시 경험하게 하는 작품이다. 역사란 기록된 사실만이 아니라, 그 사실을 지나간 사람들의 감정이 쌓여 만들어진 기억임을 이 소설은 조용히 보여준다.

소년이 왕을 사모했다는 말은, 특정 인물을 향한 동경을 넘어선다. 그것은 정당한 자리와 올바른 질서를 향한 마음이기도 하다. 『왕을 사모한 소년』은 그 마음이 어떻게 상처 입고, 그럼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지를 담담하게 기록한 역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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