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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받지 못하는 밤에 살아남아야 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 『해가 지면, 밤이 내게 기어든다』 신간 (릴라 모틀리 지음, 안현주 옮김 | 구픽)
미국 사회의 붕괴된 보호망 속에서 생존을 강요받는 10대 소녀를 그린 강렬한 데뷔 소설
출판사 제공
해가 지면 밤은 단순히 어두워지는 시간이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 밤은 생존을 위해 가장 위험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해가 지면, 밤이 내게 기어든다』는 그 밤을 살아내야 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 사회의 가장 취약한 구조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2022년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오프라 북클럽에 선정되었고, 그해 부커상 롱리스트에 최연소 후보로 지명되었다. 릴라 모틀리는 이 데뷔작을 열일곱 살에 집필했고, 스무 살에 출간했다. 놀라운 점은 이 작품이 단지 ‘젊은 작가의 성취’로 소비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수많은 매체가 이 소설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이유는, 그 시선이 집요할 만큼 정확했기 때문이다.
소설의 배경은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사회 안전망이 거의 무너진 도시에서, 열일곱 살 흑인 소녀 키아라는 오빠 마커스와 함께 근근이 살아간다. 남매 모두 학교를 중퇴했고, 부모는 약물 중독과 죽음으로 이미 삶에서 사라졌다. 두 배로 오른 아파트 월세와 오늘의 식사, 그리고 옆집에 홀로 버려진 아홉 살 소년 트레버의 끼니까지, 키아라의 삶은 선택보다 책임으로 가득하다.
오빠 마커스는 래퍼의 꿈을 붙잡고 있지만, 현실에서 아무런 수입도 가져오지 못한다. 그 몫까지 짊어진 키아라는 일자리를 찾아 나서지만,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번번이 문전박대를 당한다. 투표권보다 중요한 것이 생존이라는 사실을, 키아라는 너무 이르게 깨닫는다.
그러던 어느 밤, 술에 취한 낯선 남자와의 사건은 키아라를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밀어 넣는다. 그 선택은 자유가 아니라, 사회가 제공하지 않은 보호의 대가다. 이 소설이 강력한 이유는, 키아라의 선택을 도덕적 판단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독자는 그녀의 판단을 비난할 수 없으며, 대신 왜 이런 선택 외에는 가능하지 않았는지를 끝까지 따라가게 된다.
이야기는 개인의 비극에 머물지 않는다. 키아라의 이름이 오클랜드 경찰 내부의 대규모 성착취 스캔들 수사에 핵심 증인으로 떠오르면서, 소설은 공권력의 폭력과 사법 시스템의 실패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실제로 2015년 오클랜드에서 발생한 경찰 미성년자 성착취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제도와 권력이 어떻게 취약한 존재를 이용하고 침묵시키는지를 냉정하게 드러낸다.
『해가 지면, 밤이 내게 기어든다』는 잔혹한 현실을 선정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시인 출신 작가답게, 릴라 모틀리는 서정적이고 절제된 문장으로 고통의 밀도를 높인다. 아름다운 문장과 추락하는 현실 사이의 간극은 독자로 하여금 더 오래 그 장면에 머물게 만든다.
키아라는 끝없이 무너지고 착취당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부모를 원망하면서도 사랑하고,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세계를 인식하면서도 결국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트레버의 존재는 키아라에게 또 다른 책임이자, 동시에 삶을 붙드는 이유가 된다. 이 소녀는 영웅이 되지 않는다. 다만 버틴다. 그리고 그 버팀이 이 소설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작가는 후기에서 “취약하다는 것,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며 이 작품을 썼다”고 밝힌다. 흑인 소녀로 자라며 익숙하게 요구받았던 타인의 보호는, 정작 자신에게는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는 자각이 이 소설의 출발점이었다.
『해가 지면, 밤이 내게 기어든다』는 묻는다. 사회가 돌보지 않는 세계에서, 한 사람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소설은 단순한 성장 이야기나 피해자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를, 가장 직접적이고 불편한 방식으로 비추는 문학적 증언이다.
밤은 언제나 찾아온다. 문제는 그 밤을 누가, 어떤 조건에서 버텨내야 하는가다. 『해가 지면, 밤이 내게 기어든다』는 그 질문을 독자에게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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