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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언제나 시장의 언어를 빌리는가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 신간 (에바 일루즈 지음, 박형신·권오헌 옮김 | 이학사)

낭만적 사랑이 어떻게 계급과 소비,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와 결합해 왔는지를 추적한 사회학 고전

장세환2026년 4월 24일 오후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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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jpg출판사 제공

사랑은 얼마나 개인적인가. 그리고 그 사랑은 과연 시장과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는 이 질문을 가장 집요하고 정교하게 파고든 책이다. 사랑의 사회학자로 널리 알려진 에바 일루즈의 첫 저작인 이 책은, 현대인의 로맨스가 결코 사적인 감정에 머물지 않으며 소비 자본주의의 구조 속에서 형성되어 왔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책은 2000년 미국사회학회 감정사회학 분야 최우수도서상을 수상한 이후, 감정과 자본주의를 연구하는 핵심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일루즈는 낭만적 사랑을 찬미하지도, 그 좌절을 개인의 실패로 환원하지도 않는다. 대신 사랑이 어떤 사회적 조건 속에서 가능해지고 좌절되는지를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 이 책은 “사랑의 미덕을 찬양하거나 사랑의 실패를 비통해하는 책”이 아니다.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의 출발점은 하나의 문제의식이다. 현대 사회에서 로맨스는 흔히 탈계급적이고 순수한 감정으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계급·취향·소비 양식과 깊이 얽혀 있다는 주장이다. 일루즈는 이 점에서 전통 사회학의 핵심 개념인 ‘계급’을 다시 소환해, 사랑의 기쁨과 고통이 어떤 사회적 메커니즘을 통해 만들어지는지를 해부한다.

이 책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는 ‘낭만적 유토피아’다. 낭만적 사랑은 산업자본주의의 일상 속에서 탈출과 평등, 충만한 감정의 공간을 약속하는 유토피아로 소비된다. 여행, 레스토랑, 자연, 여가 활동, 특별한 경험들은 사랑을 완성하는 필수 조건처럼 제시된다. 그러나 이러한 로맨스는 결코 시장의 바깥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비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감정 양식으로 구성된다.

일루즈는 광고 이미지, 중간계급 잡지, 여성 잡지, 자기계발서, 연애 조언서, 인터뷰 자료 등 방대한 문화 자료를 분석하며, 사랑이 어떻게 경제적 관행으로 번역되고 다시 감정의 구조로 환원되는지를 추적한다. 낭만적 사랑은 자율적 선택의 결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소비 능력과 문화 자본, 취향을 전제로 작동한다.

이 책은 특히 중간계급과 중상계급 로맨스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여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능력, 대화를 즐길 수 있는 문화적 역량, 섬세한 감정 표현과 성적 만족은 ‘잘 맞는 커플’의 증거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일루즈는 이러한 조화가 우연한 영혼의 만남이 아니라, 계급적 취향과 소비 양식, 상징 자본의 미묘한 조응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일루즈가 낭만적 사랑을 단순히 ‘거짓된 이데올로기’로 치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낭만적 사랑은 실제로 육체적 경험과 감정적 몰입을 수반하는 강력한 의례다. 그래서 더 효과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조직한다. 사랑은 시장의 명령을 조롱하거나 우회하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는 이후 『감정 자본주의』, 『사랑은 왜 아픈가』 등으로 이어지는 일루즈 사유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제기된 질문들은 오늘날 데이팅 앱, 연애 알고리즘, 감정 노동, 자기계발 문화로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사랑이 점점 더 선택과 비교, 효율의 언어로 설명되는 현상 역시 이 책의 문제의식 안에서 선명해진다.

이학사에서 출간된 이번 무선판은 이 고전을 다시 읽기에 적절한 시점에 도착했다. 사랑은 여전히 개인의 감정으로 말해지지만, 그 조건은 점점 더 구조적이고 시장친화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루즈의 분석은 연애의 실패를 개인의 무능이나 성격 문제로 돌리는 통념에 균열을 낸다.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는 사랑을 냉소적으로 해체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이 어떤 사회적 기대와 조건 속에서 얼마나 무거운 부담을 떠안게 되었는지를 드러낸다. 이 책은 사랑이 왜 이렇게 자주 아프고, 불안하며, 좌절로 끝나는지를 개인의 문제 바깥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다.

사랑을 다시 사유하고 싶은 독자, 감정이 어떻게 사회에 의해 조직되는지 이해하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는 사랑을 버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사랑이라 믿어온 것이 어떤 세계 위에 세워졌는지를 정직하게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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