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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대신 그림으로 건네는 안부 『그림으로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 신간 (김태은, 비타북스)
암이라는 여정에서 마음을 돌보고 회복을 돕는 미술치료의 기록
출판사 제공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 특히 암이라는 진단 앞에서의 감정은 쉽게 언어로 정리되지 않는다. 『그림으로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 책이다. 암 환자와 가족의 곁에서 오랜 시간 미술치료를 이어온 김태은 교수가, 그림을 매개로 마주한 마음의 풍경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기록이다.
이 책은 2022년부터 2026년까지 암 전문 웹진 〈아미랑〉에 기고한 글 45편을 엮었다. 병원과 호스피스 현장을 오가며 만난 환자들의 삶, 치료 과정 속에서 드러난 감정, 그리고 회복을 향한 미세한 움직임들이 책 전반을 이룬다. 저자는 치료의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며,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는 인간의 마음을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그림으로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에서 그림은 예술적 완성의 대상이 아니다. 그림은 마음을 드러내는 하나의 언어이며, 혼란스러운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 놓을 수 있는 통로다. 저자는 그림을 통해 슬픔과 분노, 불안에 이름을 붙이고, 억눌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특별하지 않다. 암 진단을 받던 날의 공허함, 치료 과정에서 무너지는 일상, 가족 앞에서 감춰야 했던 두려움 등은 많은 환자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감정들이다. 이 책은 그 감정들을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충분히 느끼고 존중받아야 할 과정으로 다룬다.
눈에 띄는 구성은 책 곳곳에 배치된 ‘숨 고르는 페이지’다. 독자는 직접 선을 긋고 색을 채우거나, 질문에 따라 자신의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다. 잘 그리고 못 그리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감각에 집중하는 시간이 굳어 있던 마음을 풀어주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은 개인의 고통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미술치료 집단 안에서 서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공감으로 이어지고, 비슷한 경험이 어떻게 고립감을 덜어주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그날’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회복한다. 저자는 이러한 집단적 치유의 순간을 과장 없이 담아낸다.
또한 『그림으로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는 애도에 대해서도 깊이 다룬다. 상실은 끝내 잊는 것이 아니라, 삶을 다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관점을 통해 독자가 자신의 속도로 슬픔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암 경험자뿐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상실을 겪은 이들에게도 유효한 메시지다.
김태은 교수는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예술심리치료를 가르치며, 연세암병원 완화의료센터에서 미술치료 수퍼바이저로 활동해왔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의 환자와 가족을 만나온 임상적 경험은 이 책의 문장을 단단하게 만든다. 이론이나 조언보다 현장에서 길어 올린 언어가 중심이 된다.
『그림으로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는 독자에게 무언가를 해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어떠신가요”라는 질문을 조용히 건넨다. 그림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마음에 다가가는 이 책은, 고통의 한가운데에 있는 이들에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건넨다.
이 책은 치유의 방법을 설명하는 안내서라기보다, 치유의 순간에 동행하는 기록에 가깝다. 말로 하기 어려운 안부를 그림으로 묻는 일, 그 다정한 시도가 독자의 마음에도 조용히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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