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상세

newbooks

귀 기울이는 순간의 발견, 『내 얘기 좀 들어 볼래?』(기사카 료, 천개의바람)

동물의 목소리를 빌려 삶의 태도를 되묻는 시 그림책

장세환2026년 4월 23일 오후 9:01
354

내 얘기.jpg출판사 제공

말을 한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어쩌면 듣는 일일지도 모른다. 『내 얘기 좀 들어 볼래?』는 이 단순한 사실을 낯설게 환기시키는 그림책이다. 제목 그대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로 독자를 조용히 불러들이며 시작한다. 그 ‘누군가’는 인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서른일곱 마리의 동물들이다.

이 책은 동물들이 화자가 되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의인화나 교훈 전달에 머물지 않는다. 각 동물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생태적 조건 속에서 삶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코알라는 버티는 삶을 말하고, 해파리는 힘을 빼고 흐르는 방식을 이야기하며, 사마귀는 사소한 불편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유지한다. 이 짧은 시들은 동물의 언어를 빌려 인간의 태도를 되비춘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책이 거대한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환경 위기나 생태 윤리를 직접적으로 설파하지 않는다. 대신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낮은 목소리로 접근한다. 그 결과 독자는 자연스럽게 듣는 위치에 서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구조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시와 정보의 결합 방식이다. 각 시에는 동물의 실제 생태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장수풍뎅이의 짧은 생, 참다랑어의 끊임없는 유영, 말레이맥의 성장 과정처럼 구체적인 사실이 시적 이미지와 겹쳐진다. 이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생명의 시간과 조건을 감각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한다.

하세가와 요시후미의 그림은 이러한 구조를 정서적으로 지지한다. 과장되지 않은 선과 색으로 표현된 동물들의 표정은 시의 여백을 채우기보다, 오히려 여백을 더 깊게 만든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드러내는 방식은 이 책의 태도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내 얘기 좀 들어 볼래?』는 결국 질문을 남기는 책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존재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채 지나치고 있는가.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바꾸는 일인가.

관련 기사

글로벌 사우스의 중심, 『인도에서 기회를 만나다』 출간 (신시열, 이콘)

글로벌 사우스의 중심, 『인도에서 기회를 만나다』 출간 (신시열, 이콘)

6월 10일 오후 3:56
9
몸은 스스로 치유한다, 『자가 수리점』 출간 (헨리 비일러, 사이몬북스)

몸은 스스로 치유한다, 『자가 수리점』 출간 (헨리 비일러, 사이몬북스)

6월 10일 오후 3:52
12
사라지는 손목, 남는 체온 ― 『솜사탕 증후군』 (박윤일, 파란)

사라지는 손목, 남는 체온 ― 『솜사탕 증후군』 (박윤일, 파란)

6월 10일 오후 3:45
8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