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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 굴기의 실체를 해부하며 한국의 활로를 묻다,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권석준, 사이언스북스)
미중 칩 전쟁 이후 중국 반도체·AI 산업의 동력과 한계를 정밀 추적하며 한국 산업의 다음 전략까지 끌어온 고밀도 전략서
출판사 제공
반도체를 다루는 책은 많지만, 지금의 중국을 이렇게까지 집요하고 입체적으로 해부한 책은 드물다.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은 중국 반도체 산업을 단순한 ‘굴기’의 구호나 공포의 서사로 다루지 않는다. 권석준 교수는 막대한 국가 투자, 내수 시장, 공급망 재편, 미중 기술 패권 경쟁, 그리고 AI 산업의 팽창이 서로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하나의 산업 시스템으로 읽어 낸다. 중국을 과장해서도, 얕잡아봐서도 안 된다는 이 책의 태도는 첫 장부터 분명하다.
이 책의 강점은 기술 자체보다 구조를 본다는 데 있다. 화웨이와 SMIC, CXMT, 딥시크 같은 구체적 사례가 등장하지만, 관심은 개별 기업의 영웅담에 머물지 않는다. 중앙과 지방의 중첩된 투자, 공적 자금의 흐름, 군과 산업의 연결, 자급화 전략, 수익성과 기술 격차의 문제까지 함께 엮어 보여 주면서 중국 첨단 산업의 실체를 훨씬 넓은 스케일에서 조망한다. 강력한 추진력과 구조적 비효율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 바로 그 모순이 이 책을 읽는 핵심 축으로 작동한다.
특히 반도체를 AI와 분리하지 않고 다룬 대목이 인상적이다. 오늘의 반도체는 더 이상 특정 전자제품의 부품이 아니라 연산 능력과 에너지, 제조업 전환, 안보와 지정학을 함께 떠받치는 핵심 인프라다. 그런 만큼 중국 반도체 산업을 읽는 일은 중국 경제를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앞으로의 세계 질서가 어떤 방식으로 재편될지를 가늠하는 작업에 가까워진다.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은 이 거대한 판을 기술·정책·금융·지정학의 언어를 오가며 풀어내는 드문 전략서다.
책의 무게중심이 더 또렷해지는 지점은 후반부다. 이 분석은 중국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곧바로 한국의 질문으로 넘어간다. 메모리 강국이라는 성공 공식이 앞으로도 유효한가. 파운드리, AI 반도체, 첨단 패키징, 산업 지능화, 인력 파이프라인, 에너지 지속 가능성에서 한국은 무엇을 먼저 붙들어야 하는가. 저자는 중국식 체제를 그대로 모방할 수 없다고 선을 긋는 한편, 전략 산업 중심 지원과 유연한 제도 설계, 개방적 생태계 구축 같은 현실적 과제를 날카롭게 제시한다. 이 책이 산업 비평이자 정책 제안서처럼 읽히는 이유다.
69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그 밀도는 오히려 지금 이 책이 왜 필요한지를 증명한다. 반도체를 둘러싼 경쟁은 이미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시간표와 생존 방식의 문제로 넘어갔다.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은 중국의 현재를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이 아직 열려 있는 기회의 창 앞에서 어떤 선택을 서둘러야 하는지를 압박감 있게 환기한다. 산업의 다음 10년을 고민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정보가 아니라 판단의 프레임을 건네는 쪽에 더 가까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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