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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단순한 공연 예술이 아니라 시대의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장치다. 『연극 그리고 제국』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벤자민 푸어는 영국 제국주의와 그 이후 미국 중심의 패권 질서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읽어낸다. 이 책은 무대 위 재현이 어떻게 제국의 기억을 구성하고, 동시에 그것을 비판하는 장치로 기능해왔는지를 분석하는 작업이다.
저자는 특히 제국을 소재로 한 연극이 단순한 역사 재현이 아니라, 당대의 정치적 감각과 윤리적 갈등을 드러내는 장르로 발전해왔음을 강조한다. 데이비드 에드거의 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극작품을 사례로 들며, 제국주의가 남긴 인종, 전쟁, 경제 구조의 문제들이 어떻게 서사로 조직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연극은 단순한 이야기 전달이 아니라, 관객이 제국의 작동 방식과 그 후유증을 체감하도록 만드는 매개로 기능한다.
책이 주목하는 또 하나의 축은 ‘제국의 연극성’이다. 제국은 군사력과 경제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상징, 의식, 서사, 그리고 그것을 반복 재현하는 문화적 장치가 결합될 때 비로소 하나의 체제로 작동한다. 저자는 19세기 극장 공간의 화려한 장식과 제국적 이미지가 관객을 특정한 세계관으로 이끄는 방식, 그리고 제국의 의례가 연극적 형식을 통해 구현된 사례들을 분석하며, 제국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연 구조였음을 드러낸다.
21세기 이후의 연극은 이와 다른 방향을 취한다. 제국 중심 서사가 아닌, 주변부와 식민지 경험, 소외된 목소리를 전면에 배치하는 작품들이 증가했다. 이는 제국을 미화하는 서사에서 벗어나, 그 내부의 균열과 폭력을 드러내는 흐름으로 읽힌다. 특히 식민지 경험을 가진 인물들의 일상과 선택을 통해 ‘공모와 저항 사이’라는 복잡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은, 기존의 이분법적 역사 인식을 넘어서는 시도다.
이 책은 연극을 통해 제국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제국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묻는다. 미국을 포함한 현대 세계 질서가 여전히 제국적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떤 언어로 설명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까지 확장된다.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제국’이라는 표현은 오늘날 권력의 작동 방식이 얼마나 은폐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다.
『연극 그리고 제국』은 연극사를 다루는 책이면서 동시에 정치와 문화의 관계를 해부하는 이론서다. 무대 위에서 반복되는 이야기들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구성하는 서사의 일부다. 이 책은 그 서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엇을 숨기며, 어떤 질문을 남기는지를 끝까지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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