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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삶의 중심을 묻다, 『인생의 오후에는 잃어야 얻는다』 (칼 구스타프 융, 더퀘스트)

페르소나를 벗고 ‘자기’로 향하는 심층심리의 여정

최준혁2026년 4월 20일 오후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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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오후에는 잃어야 얻는다.jpg출판사 제공

어느 순간부터 익숙했던 삶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성취와 역할로 채워온 시간이 오히려 공허하게 흔들리는 그 지점에서, 사람은 묻게 된다. 지금까지의 나를 걷어내면, 과연 무엇이 남는가.

『인생의 오후에는 잃어야 얻는다』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의 방대한 저작에서 핵심 개념과 문장을 가려 모아, 삶의 전환기에 선 독자를 내면으로 이끈다.

이 책이 주목하는 시기는 ‘인생의 오후’다.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어느 정도 수행한 뒤 찾아오는 불안과 공허,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상실감은 실패의 징후가 아니라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신호로 읽힌다. 융은 이 시기를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해야 할 시간으로 본다.

책은 페르소나, 그림자, 무의식, 아니마와 아니무스, 개별화 같은 융 심리학의 핵심 개념을 따라가며,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오해하고 또 어떻게 다시 발견하는지를 차분히 풀어낸다. 겉으로 보이는 사회적 얼굴 아래 숨겨진 욕망과 두려움, 억눌린 감정들이 결국 ‘자기’를 향한 길목에서 마주해야 할 대상임을 강조한다.

특히 이 책은 ‘치유’를 고치는 과정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어둠과 결핍을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일부로 인식할 때 비로소 온전한 자기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시선이 중심을 이룬다.

또한 책은 개인의 내면 탐구가 결코 고립된 작업이 아님을 짚는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비추어볼 수 있으며, 그 거울을 통해 페르소나를 벗고 진짜 자신에 가까워진다. 결국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혼자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이다.

『인생의 오후에는 잃어야 얻는다』는 답을 제시하기보다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다.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묻는 이 책은, 지금의 삶이 어딘가 비어 있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조용한 사유의 길을 건넨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멈춰 서게 되는 순간, 이 책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속도를 재촉하지 않고,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건네며 그 자리에서부터 천천히 다른 길을 열어 보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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