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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끝에 그려지는 얼굴, 관계의 시간에 대하여 『어느 개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신간 출간(마리카 마이얄라, 위고)
외로움의 끝에서 시작되는 가장 느린 만남의 이야기
출판사 제공
누군가를 그린다는 건, 단순히 얼굴을 옮기는 일이 아니다. 오래 바라보고, 기다리고, 결국 그 존재를 이해하려는 시간이다. 그림책 『어느 개의 초상화를 그리려면』은 그 느린 과정을 통해 관계와 고독의 의미를 조용히 풀어낸다.
이 책은 핀란드를 대표하는 그림책 작가 마리카 마이얄라의 신작이다. 그래픽디자인과 영화학을 공부한 그는 특유의 거친 크레용 질감과 감정의 결을 살리는 그림으로 주목받아 왔다. 루돌프 코이부상과 핀란드 국가 일러스트 예술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그는, 어린 시절의 고립과 쓸쓸함을 바탕으로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 왔다. 전작 『너는 활짝 피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에서 ‘기다림’의 가치를 이야기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만남’과 ‘이해’의 순간을 그린다.
이야기는 외로움 속에 갇힌 늑대에서 시작된다.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못한 채 성 안에 머무르던 늑대는 어느 날, 한 초상화 속 눈물에서 감정을 발견하고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릴 대상이 없다. 그때 정원사 개 ‘코이라넨’이 등장한다. 낡은 코트를 입고 나타난 이 작은 존재는 늑대의 정원을 바꾸고, 늑대의 마음에도 서서히 균열을 만든다.
이 작품의 핵심은 사건이 아니라 변화다. 늑대는 끝내 다정해지지 않는다. 여전히 서툴고, 때로는 날카롭다. 하지만 그 서툼 속에서 조금씩 타인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작가는 이 과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크레용으로 긁어낸 듯한 질감, 완전히 닫히지 않은 선, 어딘가 흔들리는 색감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그림은 이야기의 보충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서사로 기능한다.
책의 제목은 프랑스 시인 자크 프레베르의 시에서 비롯된다. 새를 그리기 위해서는 먼저 기다려야 한다는 그 시처럼, 이 책 역시 관계를 서두르지 않는다. 늑대와 개의 관계는 극적인 사건 없이, 함께 있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형태를 갖춘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려지는 과정이라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 책을 덮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이야기보다 감정의 온도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관계는 더 어려워지지만, 동시에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누군가를 그린다는 행위가 결국은 서로를 닮아가는 과정이라는 조용한 통찰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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