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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아닌 시간 속에서 드러난 인간의 얼굴, 『단종, 영월에서의 124일』 (이규희, 이지북)

유배지에서의 124일, 역사 속 소년의 내면을 따라가다

장세환2026년 4월 10일 오후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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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영월에서 의124일.jpg출판사 제공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의 유배 시기를 다룬 역사동화 『단종, 영월에서의 124일』이 출간됐다. 이규희 작가는 궁에서 쫓겨난 이후 영월 청령포에 이르기까지 단종이 겪은 마지막 시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이 작품은 기존 역사서처럼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기보다, 한 인간으로서 단종이 겪은 감정과 변화에 집중한다. 왕위에서 물러난 뒤 처음 마주하는 세상, 그리고 그 속에서 스스로를 인식해 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궁궐을 떠나는 장면은 그 변화의 출발점이다.
“마침내 가마가 궁궐을 빠져나왔다. … 모두 내쫓겨난 홍위를 보며 애통해했다.”
이 대목은 권력에서 밀려난 존재가 처음으로 사회와 마주하는 순간을 담아낸다. 단종은 더 이상 왕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존재를 확인해야 하는 한 개인이 된다.

영월 청령포는 단종의 시간을 압축해 보여주는 공간이다. 삼면이 강으로 막히고 한쪽이 절벽인 이곳은 자연 지형 자체가 탈출 불가능한 조건을 만든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이곳은 참으로 세상에 둘도 없는 감옥이었다.”
이 표현은 단종의 고립된 상황과 심리 상태를 동시에 드러낸다.

작품은 이 고립된 공간 안에서도 이어지는 관계에 주목한다. 특히 엄흥도와의 만남은 신분을 넘어선 인간적 연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이야기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이어지는 관계는 단종이라는 인물을 보다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이 책은 단종을 역사 속 비극적 인물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권력에서 배제된 이후에도 이어지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감정과 선택을 따라간다. 사건이 아니라 ‘시간’을 중심에 놓은 서술 방식이 특징이다.

『단종, 영월에서의 124일』은 기록으로 남은 역사를 다시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다. 이름으로만 기억되던 인물이 아닌, 시간을 살아낸 존재로서의 단종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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