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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은 결과일 뿐이었다, 『자연에서 인간까지 속임수의 진화』 (리싱 선, 세종)

속임수를 통해 드러나는 생명의 진짜 작동 방식

장세환2026년 4월 10일 오전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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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인간까지 속임수의 진화.jpg출판사 제공

우리는 거짓말을 비난하고 정직을 이상으로 여긴다. 그런데 만약 자연이 처음부터 정직하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연에서 인간까지 속임수의 진화』는 이 불편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속임수는 일탈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라는 전제다.

저자 리싱 선은 뻐꾸기의 탁란, 난초의 위장, 박테리아의 무임승차 같은 사례를 통해 생명체가 어떻게 타인의 감각과 인지의 틈을 이용해 살아남아 왔는지를 추적한다. 속임수는 특정 종의 특성이 아니라 생명 전반에 반복되는 패턴이며, 오히려 진화를 밀어붙이는 압력으로 작동해 왔다고 본다.

책은 속임수를 두 가지 법칙으로 설명한다. 하나는 정보 자체를 왜곡하는 ‘거짓말’, 다른 하나는 상대의 판단 구조를 흔드는 ‘기만’이다.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자연은 끊임없는 ‘속임과 대응’의 경쟁을 이어 왔다. 그 결과 감시, 판별, 신뢰 같은 복잡한 시스템이 함께 발달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구조가 인간 사회와 거의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데 있다. 사기, 가짜 뉴스, 자기기만 같은 현상도 결국 같은 원리 위에 놓여 있다. 우리는 특별해서 속이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그런 방식으로 진화해 온 생명체라는 것이다.

책의 시선은 도덕 판단을 잠시 유보한다. 속임수를 없애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것이 만들어낸 변화에 집중한다. 속임수는 질서를 무너뜨리는 힘이면서 동시에 더 정교한 질서를 만들어내는 계기이기도 하다. 정직 역시 속임수가 사라진 뒤 생긴 것이 아니라, 그 경쟁 속에서 선택된 전략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은 더 이상 단순한 질서의 공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속이고, 누군가는 간파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틈을 다시 이용하는 흐름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복잡한 움직임 속에서 인간 사회의 모습도 낯설지 않게 겹쳐진다.

결국 질문은 단순해진다. 우리는 왜 속이는가가 아니라, 이런 세계에서 무엇을 믿고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가깝다. 이 책은 그 기준이 바깥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안에 있다는 사실을 슬쩍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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