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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기억과 취향을 끓여낸 한 그릇, 『돼지국밥』 (고혜림, 부산대학교출판문화원)
700여 국밥집과 30년 기록을 바탕으로 ‘맛’이 아닌 ‘취향과 정체성’으로 풀어낸 음식 인문서
출판사 제공
돼지국밥을 평가하는 기준은 언제나 비슷했다. 어디가 더 진한지, 어느 집이 더 유명한지, 몇 곳을 더 돌아봤는지가 경험의 척도가 됐다. 그러나 『돼지국밥』은 그 익숙한 질문을 뒤집는다. 무엇이 더 나은가가 아니라, 왜 그것을 선택하는가를 묻는다.
이 책은 부산 일대 700여 국밥집이라는 방대한 데이터에서 출발하지만, 결론은 의외로 개인의 감각에 머문다. 오랜 시간 반복된 식사 경험 속에서 형성되는 취향, 그리고 그 취향이 기억과 결합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저자 고혜림이 30년간 이어온 탐방 기록은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선택의 축적으로 읽힌다.
돼지국밥의 기원을 설명하는 방식 역시 기존 서사와 결이 다르다. 피란 시기의 생존 음식이라는 역사적 맥락을 짚으면서도, 그 서사를 현재의 식탁으로 끌어온다. 솥과 뚝배기, 골목과 노동의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음식이 형성되는 조건으로 제시된다. 국밥은 그렇게 하나의 메뉴가 아니라 환경과 시간의 결과물로 재해석된다.
흥미로운 지점은 취향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방식이다. 맑은 국물과 뽀얀 국물, 다대기와 정구지의 선택은 단순한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경험과 기억이 반영된 결과로 읽힌다. 책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각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기준을 자각하도록 유도한다.
다양한 인물의 목소리를 끌어들인 구성도 눈에 띈다. 지역 사학자와 언론인, 업계 관계자들의 시선은 돼지국밥을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 현상으로 확장시킨다. 로컬 음식이 K-컬처의 일부로 자리 잡는 과정 역시 이 맥락에서 설명된다.
『돼지국밥』이 다루는 것은 음식이 아니다. 반복된 선택이 어떻게 취향을 만들고, 그 취향이 개인의 정체성으로 굳어지는지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익숙한 한 그릇을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은 여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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