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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과 선의 사이에서 무너진 한 삶, 『슬픈 살인』 출간(조너선 로즌, 문학동네)

조현병과 폭력, 우정과 제도의 실패를 끝까지 추적한 논픽션

장세환2026년 3월 24일 오후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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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살인.jpg출판사 제공

한때 그는 미국 사회가 가장 보고 싶어 하던 얼굴이었다. 예일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한 청년, 조현병을 이겨낸 희망의 아이콘,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넘어선 새로운 서사의 주인공. 그러나 그 눈부신 이야기의 끝에서 한 임신부가 목숨을 잃었다. 조너선 로즌의 『슬픈 살인』은 이 끔찍한 파열음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고통스러운 질문 앞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한 사람은 어디서부터 무너졌는가. 그리고 그 무너짐을, 누가 끝내 보지 못했는가.

책은 1998년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캐럴라인 코스텔로 살인 사건을 중심에 놓는다. 가해자 마이클 라우도어는 피해자의 연인이었고, 동시에 조현병을 앓았으며, 또 한편으로는 누구보다 촉망받던 엘리트였다. 저자 조너선 로즌에게 그는 신문 기사 속 인물이 아니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다. 이 거리는 책의 결을 결정한다. 사건을 소비하지 않고, 친구를 변호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냉정한 기록자로 물러서지도 않는다. 로즌은 우정의 기억과 사회적 사실, 의학적 역사와 제도적 실패를 한 줄로 꿰어내며 한 인간의 삶을 복원한다.

그래서 『슬픈 살인』은 범죄 실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신질환을 둘러싼 사회의 무지와 공포, 그리고 잘못 작동한 선의를 해부하는 책에 가깝다. 마이클은 병을 이겨낸 상징으로 소비되는 동안 정작 자기 병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자리로 밀려났다. 자유와 권리를 존중한다는 명분은 있었지만, 그 명분은 위험 신호 앞에서 누구도 개입하지 못하는 공백으로 이어졌다. 낙인을 피하려는 사회적 태도가 오히려 방치와 고립을 낳았다는 이 역설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아픈 대목이다.

저자는 정신의학의 역사도 촘촘히 불러온다. 전두엽 절제술 같은 야만적 치료의 시대부터, 지역사회 정신보건과 인권 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까지, 미국 사회가 정신질환을 어떻게 이해하고 관리해왔는지를 넓은 시야로 펼쳐 보인다. 중요한 점은 이 책이 어느 한쪽을 간단히 दोष하듯 몰아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강제 치료의 폭력도, 무개입의 방치도 모두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끝까지 붙든다. 단정 대신 질문으로 밀고 나가는 힘이 이 책의 무게를 만든다.

문장은 차갑지 않다. 오히려 지나치게 뜨거워지지 않기 위해 애쓴 흔적이 선명하다. 친구의 붕괴를 바라보며 느꼈을 질투와 동경, 연민과 거리감까지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대목에서는 회고록의 밀도가 살아난다. 동시에 사건을 둘러싼 언론, 법, 대학, 치료기관, 가족의 선택을 차례로 짚어가는 장면에서는 사회과학 논픽션의 단단한 골격이 드러난다. 한 권 안에 우정의 기록과 제도 비판, 질병 서사와 시대 보고서가 함께 들어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슬픈 살인』이 오래 남는 이유는 정신질환을 자극적으로 재현하는 대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한계까지 정직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책은 조현병을 낭만화하지도 않고, 범죄를 병 하나로 환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비극이 일어나기 전까지 수많은 사람이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보지 않았는지 묻는다. 그 질문은 미국 사회만 향하지 않는다. 성과와 회복의 서사를 좋아하면서도, 돌봄의 긴 시간과 불편한 책임은 자주 외면하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돌아온다.

『슬픈 살인』은 읽기 편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정신질환과 범죄, 제도와 책임, 관계와 파국을 둘러싼 논의를 더는 얕은 상식으로 다룰 수 없다고 느끼는 독자라면 이 책 앞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한 사람의 파멸을 따라가는 기록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 되묻는 보고서다. 슬픔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에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묵직하게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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