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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이라는 얼굴 뒤의 인간 본성을 다시 묻다, 『다정함의 배신』 (조너선 R. 굿먼, 박지혜 옮김, 다산초당)

“인간은 서로를 착취하기 위해 다정해졌는가”… 협력과 이타심의 통념을 뒤집는 인간 본성 분석서

장세환2026년 3월 17일 오후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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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의 배신.jpg출판사 제공

우리는 오래도록 인간이 협력과 이타심을 바탕으로 문명을 일궈 왔다고 믿어왔다. 공동체를 지키고 타인을 돕는 마음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라는 통념도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다정함의 배신』은 그 익숙한 믿음에 정면으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다정함과 협력이 과연 순수한 선의의 결과였는지, 아니면 자원을 선점하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정교하게 발달한 전략이었는지를 다시 묻는 책이다.

다산초당이 펴낸 이 책에서 조너선 R. 굿먼은 인간 본성을 선과 악, 이타성과 이기심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허약한지 짚는다. 저자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존재로 규정하는 대신, 경쟁과 협력을 상황에 따라 선택하며 진화해 온 존재로 본다. 다시 말해 인간은 협력하는 동물이면서도, 더 효율적으로 경쟁하기 위해 협력하는 척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책은 인류학과 진화생물학, 철학, 심리학, 사회학을 넘나들며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수렵채집 사회 연구부터 행동경제학 실험, 인간 본성을 둘러싼 홉스와 루소의 논의까지 다양한 사례를 끌어와 협력이 때로는 착취와 기만을 감추는 장치로 작동해 왔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인간이 서로를 돕는 이유가 언제나 공동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성공과 자본 축적, 권력 확보 같은 목적과도 깊이 연결돼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오늘날의 사회적 모순이다. 협력과 연대, 공정과 도덕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더 커졌는데도 불평등과 착취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저자는 이 현상을 인간의 위선이나 도덕적 실패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협력 자체가 이미 경쟁의 일부로 작동해 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공정은 모두가 진심으로 바라는 목적이라기보다, 서로의 행동을 재고 평가하는 기준이자 잣대에 가깝다는 설명도 이런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책의 후반부는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냉소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인간이 규범을 따르며 기회가 생기면 남을 착취하는 존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규범을 깨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 본성의 불완전함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더 현실적인 협력과 연대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맹목적인 신뢰도, 인간에 대한 순진한 낙관도 결국 사회를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정함의 배신』은 불편한 책이다. 인간의 선함을 믿고 싶은 독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이 책은 지금의 시대와 맞닿아 있다. 연대와 신뢰를 회복하려면 먼저 인간이 얼마나 다정한 존재인가를 되풀이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다정함이 어떻게 착취와 기만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익숙한 신화를 걷어내고, 그 위에서 더 단단한 협력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독자에게 오래 남는 질문을 건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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