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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피란, 철도와 가족의 시간을 건너온 삶의 기록 『내 사람의 흔적들』 (최선권, 파랑새미디어)

흥남 철수작전의 기억부터 철도 역장으로 보낸 세월까지… 한 세대의 굴곡진 생애를 61편의 자전적 기록으로 담아내

장세환2026년 3월 13일 오후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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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흔적들.jpg출판사 제공

전쟁은 한 개인의 삶을 단번에 바꾸어 놓았다. 어린 시절 북한에서 살다가 흥남 철수작전으로 남쪽으로 내려와 피란민 수용소를 거친 기억은,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오래 붙드는 상처이자 출발점이 되었다. 『내 사람의 흔적들』은 바로 그 시간 위에서 시작된 한 개인의 삶을 따라가는 자전적 기록이다.

파랑새미디어가 펴낸 이 책에서 저자 최선권은 함경남도 흥남에서 태어나 1950년 12월 흥남 철수작전 때 가족과 함께 남으로 피란했던 기억을 중심에 놓고 자신의 삶을 풀어냈다. 거제도 피란민 수용소의 혹독한 겨울,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은 일, 이후 서울로 올라와 성장한 과정이 책의 초반을 이룬다. 전쟁터가 아닌 피란지에서도 많은 민간인이 위생과 질병, 가난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저자의 증언은 이 기록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책은 유년기의 피란 경험에만 머물지 않는다. 중동고 재학 시절과 4·19를 지나 청년기를 거쳐, 철도청 공무원으로 살아온 수십 년의 시간이 61편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제천역 전철원으로 시작해 능내역과 이문역 역장을 지낸 철도 현장의 경험, 대통령 전용열차와 관광열차, 심야 근무와 역무원의 습관 같은 구체적 에피소드가 담겼다. 철도 현장에서 만난 사건과 사람들, 직업인으로서의 책임감이 한국 현대사의 한 단면처럼 기록된다.

가족 이야기도 책의 중요한 축이다. 군 복무와 결혼, 아내와 자녀를 둘러싼 일상, 차례상 앞에서 떠오른 이산가족의 슬픔, 생활 속에서 마주한 작은 위안과 상실이 곳곳에 배어 있다. 저자가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 수기 공모에 「차례상 앞의 눈물」로 입선해 한국방송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이력 역시, 이 책이 단순한 회고록을 넘어 한 시대의 집단 기억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은 거창한 영웅담보다는 평범한 삶의 지속에 더 많은 무게를 둔다. 철도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뒤에도 학원 차량 운전, 아파트 경비원, 학교 당직 전담원으로 일했던 시간까지 담아내며, 노동과 생계, 가족과 책임으로 이어진 한 세대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옥조근정훈장을 받은 철도 공무원의 이력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전쟁과 피란, 노동과 가족의 시간을 견디며 살아온 생활인의 목소리다.

『내 사람의 흔적들』은 한 사람의 자서전이면서 동시에 한국 현대사를 통과해 온 평범한 이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전쟁의 상처와 피란의 기억, 공직자로 살아온 세월과 가족을 지켜온 시간들이 한데 모여, 결국 한 시대를 버텨낸 사람의 흔적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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