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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앞에서 길을 잃지 않게, 『첫 번째 미술관 북마크』 (김상래, 초록비책공방)
루브르부터 내셔널 갤러리까지, 유럽 10곳 미술관을 가족의 속도로 걷게 하는 다정한 도슨트 안내
출판사 제공
미술관은 늘 일정표에 들어가지만, 막상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음이 먼저 주춤한다. 작품은 많고 시간은 짧고,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말이 괜히 압박으로 바뀐다. 『첫 번째 미술관 북마크』는 그 부담을 가볍게 내려놓게 한다. 수년간 미술관 도슨트로 관람객과 작품 사이를 이어 온 김상래가, 유럽 대표 미술관 10곳에서 꼭 만나 볼 만한 그림과 조각을 골라 “어디에 먼저 시선을 둘지”부터 안내한다. 해설집이라기보다, 그림 앞에서 잠깐 펼쳐 보는 표시등 같은 책이다.
구성은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로 이어지며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박물관, 로뎅박물관, 오랑주리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브리튼, 코톨드 갤러리,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반 고흐 미술관,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을 따라 걷는다.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나폴레옹의 대관식, 올랭피아, 발레 수업, 이삭 줍는 여인들, 지옥의 문, 수련, 오필리아, 야경,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같은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하지만, 책이 하는 일은 정답을 쌓는 게 아니다. 작품을 “알아맞히는 감상” 대신 “생각이 열리는 감상”으로 방향을 틀어 준다.
저자는 질문을 잘 쓴다. 이 인물은 왜 이렇게 당당해 보일까, 내가 이 장면 속에 서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왜 이 그림은 그 시대를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같은 질문들이 페이지를 넘길 힘이 된다. 설명을 길게 늘어놓기보다, 그림 한 장면을 내 경험과 연결해 보게 만들면서 감상의 주도권을 독자에게 돌려준다. 각 파트에는 ‘예술과 나를 이어 보기’ 코너를 두어, 아이와 어른이 나란히 앉아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도록 설계했다.
또 하나의 매력은 미술관 자체를 풍경으로 보여 준다는 점이다. 기념사진 배경으로 스쳐 지나가던 공간이 어떤 시대의 기억을 품고 있는지, 건축과 역사까지 짧고 흥미롭게 엮어 “미술관을 걷는 감각”을 살려 준다. 작품 수가 방대해 오히려 복잡하게 느껴지는 미술관에서, 각자의 속도로 멈추고 오래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현실적인 가이드다.
여행을 앞둔 가족에게는 일정표를 덜 빡빡하게 만들 용기를 주고, 미술 입문자에게는 첫 관람의 문턱을 낮춰 준다. 무엇보다 “한두 작품만 제대로 만나도 미술관은 훨씬 다정해진다”는 메시지가 책 전반에 배어 있다. 결국 이 책은 작품을 더 많이 보게 하는 책이 아니라, 한 작품을 더 오래 남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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