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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의 시간, 찰나에 스민 그리움 『눈 깜짝할 사이』 신간 출간 (민재웅, 바른북스)

타슈켄트에서 건져 올린 삶의 여백과 어머니의 시간

최준혁2026년 2월 27일 오후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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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jpg출판사 제공

인생은 길다고 믿지만, 돌아보면 한순간이다. 제목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세월을 붙잡기 위해, 시인은 멈춰 서서 시간을 들여다본다. 『눈 깜짝할 사이』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한국 문학을 가르치며 살아가는 민재웅 시인의 두 번째 시집으로, 이방의 땅에서 길어 올린 고독과 그리움, 그리고 생의 근원을 향한 사유를 담았다.

시집은 4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타슈켄트와 히바, 치르치크 같은 이국의 공간을 배경으로 이방인의 감정을 응축한다. 고려인들의 역사와 겹쳐지는 개인의 외로움, 멈춘 듯 흐르는 시간의 감각이 절제된 언어로 드러난다. 낯선 도시의 골목과 장례식장, 첫눈 내리는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존재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2부와 4부는 일상의 매듭을 짚는다. 김밥집 TV 뉴스, 칼국수 한 그릇, 출근길, 손톱을 깎는 순간 같은 사소한 장면들이 시 안에서 성찰의 계기로 변한다. 거창한 사건 대신 생활의 결을 붙드는 태도는, 바쁜 현대인의 호흡을 잠시 늦춘다. 시인은 익숙한 것들 속에서 낯선 질문을 길어 올리며, 우리가 흘려보낸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3부는 시집의 중심을 이룬다. 백세를 넘긴 어머니와 고향의 기억이 깊은 정서로 이어진다. “어머니의 시간”과 “엄마의 방” 같은 작품들은 사모곡의 정서를 품으면서도 과장되지 않는다. 고향 집의 풍경과 부모의 노쇠, 생일 아침의 공기까지 세밀하게 복기하며, 삶의 근원으로 되돌아간다. 그 회상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라 존재의 뿌리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민재웅 시인은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환갑의 나이에 타슈켄트로 이주해 한국어와 한국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력처럼 그의 시에는 ‘이식’과 ‘정착’의 감각이 스며 있다.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기억 속 고향을 품은 채 살아가는 태도는 시 전반을 관통하는 정조다.

『눈 깜짝할 사이』는 시간을 붙잡겠다는 조급함 대신, 흘러가는 시간을 인정하는 담담함을 택한다. 찰나를 통해 영원을 비추는 시선,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한 어머니와 고향의 얼굴은 독자에게 묻는다. 지금 이 순간을, 우리는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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