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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지 않은 채로도 괜찮은 시작,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신간 출간 (가오이러, 기탄출판)

“용기를 내” 대신 곁에 서 있는 그림책

장세환2026년 2월 27일 오후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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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jpg출판사 제공

새 학교 첫날, 낯선 집의 첫 아침, 모르는 얼굴들로 가득한 공간 앞에서 우리는 한 번쯤 이렇게 말한다.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가오이러의 그림책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 말이 머무는 시간을 조용히 따라간다.

2025년 볼로냐 국제 아동 도서전 Amazing Bookshelf 수상 작가인 가오이러의 두 번째 그림책인 이 작품은 새집으로 이사한 아이의 하루를 담는다. 새 학교, 새 친구, 새 교복, 새로운 수업. 아이 앞에는 낯선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리고 아이 곁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의 괴물들이 맴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괴물을 물리치거나 아이에게 “할 수 있어”라고 다독이지 않는다.

대신 지켜본다. 아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시간을. 시간이 흐르는 동안 새 집의 공기가 조금 덜 낯설어지고, 새 길의 색이 조금 부드러워지고, 새 교복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게 되는 과정을. 준비가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가 그 자리에 계속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변화다. 이 책은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과 ‘겁에 질린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말 대신 그림으로 보여 준다.

수채화 특유의 맑은 색감은 처음엔 차갑고 흐릿하다가, 장면이 넘어갈수록 서서히 따뜻해진다. 아이 곁을 따라다니는 괴물들도 위협적이기보다 어딘가 서툴고 낯익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밀어내는 대신, 함께 걸어가며 빛의 온도가 바뀌는 순간을 포착하는 방식이다.

이 책은 『선택을 심어요』보다 먼저 쓰인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두 번째로 소개됐지만, 오히려 이 순서가 흥미롭다. 단단한 선택의 이야기를 하기 전, 작가는 ‘아직 준비가 안 된’ 떨리는 출발을 먼저 그려 두었다. 모든 선택과 성장은 결국 이 미완의 순간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되짚게 한다.

번역은 황석희가 맡았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을 둔 아버지로서, 그는 과한 위로 대신 담담한 동행의 톤을 선택한다. 문장은 짧고 단순하지만, 소리 내어 읽으면 반복 속에서 온기가 조금씩 쌓인다.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는 아이에게 용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말한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도 시작은 가능하다고. 그리고 그 시작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단단하다고. 새로운 문 앞에 선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이 그림책은 큰 소리 대신 낮은 숨으로 건네는 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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