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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이미 미래를 연습해왔다, 『자연의 상상력』 (데이비드 패리어, 김영사)

적응과 공존의 전략에서 찾는 희망의 단서

장세환2026년 2월 25일 오후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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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상상력.jpg출판사 제공

기후 위기와 대량 멸종, 폐기물 문제가 일상이 된 시대다. 경고의 언어는 넘쳐나지만, 해법은 좀처럼 선명해지지 않는다. 『자연의 상상력』은 이 익숙한 질문을 다른 자리로 옮긴다. 자연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두는 대신, 오랜 시간 변화에 대응해온 주체로 바라보며 그 전략을 추적한다.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문학과 환경을 가르치는 데이비드 패리어가 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들며 적응의 기록을 읽어낸 책이다.

저자는 “바꿔야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수천 년에 걸쳐 진행되던 환경 변화가 이제는 수십 년 만에 일어나는 상황에서, 적응은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 되었다는 진단이다. 절벽제비는 도로 위 차량 사이를 날기 위해 날개 형태를 조정하고, 애틀랜틱톰코드는 독성 오염에 맞서 유전적 변이를 빠르게 축적한다. 도시 달팽이는 열섬 현상에 대응해 껍데기 색을 바꾼다. 점균류는 중심 신경계 없이도 먹이에 이르는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낸다. 생물들이 남긴 ‘선택의 흔적’은 변화가 곧 파국만을 뜻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책은 자연의 적응을 낭만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선박 소음이 고래의 노래를 방해하고, 인공 구조물이 서식지를 밀어내는 장면도 함께 짚는다. 다만 그 속에서도 생명은 환경을 읽고 전략을 수정한다. 까마귀는 조류 퇴치용 철심을 뜯어 둥지 재료로 쓰고, 도시의 거미는 곤충이 줄어든 환경에 맞춰 거미줄을 더 촘촘히 짓는다. 적응은 유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과 문화, 관계의 재배열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동시에 인간의 실험도 조명한다. 스스로 분해되는 바이오 소재, 폐기물을 재구성한 건축 사례, 생명체의 원리를 모방한 기술은 자연의 논리를 배우려는 시도다. 저자가 말하는 상상력은 공상이 아니라 학습의 능력이다. 자연이 축적해온 조율과 협력의 방식을 읽어낼 때, 인간 역시 다른 선택을 설계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또렷하다.

결국 『자연의 상상력』이 묻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태도다. 미래는 통제의 결과가 아니라 배움의 결과라는 점을, 생명의 긴 시간 속에서 차분히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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